사진출처 - 전주책쾌
제3회 전주책쾌 북페어 후기
사람들이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메고 분주히 오갑니다. 이틀 간 열린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 행사는 조선 시대의 떠돌이 책장수 ‘책쾌’에서 영감을 얻은 축제입니다. 책쾌란 무엇일까요? 조선시대에는 서점을 차리는 것이 금지되어 책 유통이 어려웠는데, 책쾌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책을 사고팔던 서적 중개상, 일종의 “걸어다니는 서점”이었습니다. 막힌 유통의 흐름을 뚫고 지식을 퍼뜨린 책쾌들은 현대적으로 보자면 출판기획자이자 마케터, 이동 서점 주인 겸 북큐레이터 같은 다재다능한 책의 유랑자였지요.
이 역사적 개념을 되살려, 2023년에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가 시작했습니다. “책의 도시”를 표방해온 전주에서 지역의 출판 문화와 독립출판 크리에이터들을 연결하고자 기획한 행사로, 전국 각지의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드는 현대판 책쾌들의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특히 “자기만의 깃발을 들고 책의 기수가 되자”는 모토를 내걸며, 옛 책쾌들이 깃발을 세우고 책을 팔러 떠나던 모습을 현대에 투영했습니다. 실제로 행사장에서는 아기자기한 손깃발이 곳곳에 꽂혀 있어 지나간 책쾌의 전통을 기념하면서도, 오늘날 창작자들의 독립성과 개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전주책쾌는 독립출판물 창작자들과 지역 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도 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행사에서는 전주의 상징들을 본뜬 캐릭터(덕진공원의 오리, 전주천의 수달, 남부시장 도깨비시장 캐릭터 등)를 만들어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지역성에 뿌리를 둔 책 축제임을 강조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창작자들과 관람객들은 이처럼 전주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책으로 소통하며, 책과 도시가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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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책쾌 북페어의 첫 걸음은 2023년 여름, 연꽃이 피어 있던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마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주에서 처음 열린 독립출판 북페어였는데요, 전국에서 모인 약 67개 팀의 독립출판 창작자·소규모 출판사·동네책방들이 직접 만든 책을 한자리에 펼쳤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공원의 정자와 연못을 배경으로 펼쳐진 첫 책쾌에는 전주의 풍경과 어우러진 아늑한 책잔치의 정취가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연화정 도서관 앞마당에서 ‘책쾌 선언문’을 낭독하며 개막을 알렸고, 뜻깊은 강연과 체험 프로그램들이 이어졌습니다. 7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연꽃향과 책 내음이 어울린 그곳에서 전주책쾌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이듬해 2024년, 전주책쾌는 한 단계 도약을 이룹니다. 행사를 시내 전주남부시장 인근의 복합문화공간 ‘문화공판장 작당’으로 장소를 옮겨 규모를 크게 키웠습니다. 참여 팀은 전년보다 24팀 늘어난 총 89팀으로 증가했는데요,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 각지의 독립 출판인들이 몰려들면서 경쟁률 3대 1의 치열한 부스 신청을 뚫고 참가했을 정도입니다. 새롭게 단장된 2층짜리 옛 시장 건물을 개조한 공간은 책 축제로 북적였고, 이틀간 수천 명의 관람객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실제로 현장에 있던 한 창작자는 “올해 넓고 쾌적한 공간조차 협소하게 느껴졌다”며 놀랄 정도로 관람객 열기가 대단했는데, 수도권 대형 도서전에 뒤지지 않을 인파였습니다. 그만큼 지역도 이렇게 북페어가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2회 만에 입증한 셈이죠.
2024년에는 프로그램도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조선시대 책쾌를 연구해온 교수의 특별 강연부터, 7년 차 독립출판 작가의 생존기, 군산,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온 독립출판인들의 경험 공유까지 다양했는데요, 이틀간 총 4회의 알찬 강연이 열려 관람객들은 “수준 높은 강연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는 호평을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참가팀의 대표 도서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 체험 프로그램, 현장 이벤트 등 책을 매개로 한 놀이와 배움이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덕분에 축제 분위기는 더욱 다채로워졌고, “완판본의 도시 전주에서 책이 완판되었다”는 재치 있는 말이 나올 만큼 여러 팀에서 준비해온 책이 동날 정도로 인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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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7일부터 8일, 세 번째 전주책쾌는 마침내 전국구 북페어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참가팀은 92개 팀으로 또 늘었고, 이틀간 약 7,800여 명의 관람객이 행사장을 다녀가며 역대 최대 인파를 기록했습니다. 전주의 전통시장 한복판에서 열린 이 북페어에 특히 2030 세대의 젊은 관람객들이 대거 몰려들었는데요, 북페어 첫날 아침에는 책쾌 복장을 한 배우와 시민들이 풍남문 광장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며 개막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펼쳐 눈길을 끌었습니다. 3회째인 2025년에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자기만의 깃발을 들고 책의 기수가 되자”는 기치를 내걸고, 더욱 다양한 강연과 전시, 이벤트를 선보였습니다. 그 결과 전국 290여 팀이 참가 신청을 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고, 엄선된 92팀이 저마다 개성 넘치는 신작들과 굿즈로 전주의 초여름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행사장을 메운 관람객들과 참가자들은 전주책쾌에 대해 입을 모아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SNS와 블로그에는 찬사와 솔직한 후기들이 넘쳐났는데, 몇 가지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관람객은 벽에 붙인 메모지에 “전주살이 15년 차,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다”며 감탄을 남겼고, 또 다른 이는 “즐거운 시간, 즐거운 장소, 잘 놀다 갑니다”라고 써서 축제의 즐거움을 표현했습니다. 심지어 “책쾌만을 기다렸어요. 여름 대명절”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 행사를 한 해의 큰 즐거움으로 여긴다는 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응들은 전주책쾌가 관람객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체험을 선사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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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한 창작자들과 셀러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경기 수원에서 온 한 큐레이터는 “관람객이 이렇게 많이 몰릴 줄 몰랐다”며 첫 참여 소감을 밝혔고, 첫날 행사가 끝난 뒤 열린 뒤풀이에서 “전주책쾌가 전국 북페어 중 최고”라는 찬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팀은 준비해온 책이 하루 만에 절반 이상 팔려버려, “세상에 하나뿐인 독립출판물들이 첫날 벌써 4종이나 매진됐다”는 놀라움과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SNS에는 “역대급 판매량 달성”, “완판본의 도시 전주에서 완판이라니!” 등의 후기 글이 속속 올라와, 참여한 창작자들이 판매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건설적인 비판과 개선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는데요.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공간과 규모에 대한 아쉬움이었습니다. 2024년, 2025년 연속으로 행사장을 찾았다는 한 참가자는 “관람객이 너무 많아 넓어진 행사장도 협소하게 느껴졌다”며, 전주의 북페어가 단 2회 만에 크게 흥행한 만큼 “더 큰 공간에서 더 많은 참가팀의 책을 선보여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인기와 규모가 커진 만큼 쾌적한 동선과 공간 확보가 과제로 떠오른 것입니다. 일부 관람객들은 인기 강연의 경우 자리가 부족해 서서 들어야 했던 불편이나, 행사장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에피소드를 전하며 세부적인 개선점을 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 섞인 조언들조차 전주책쾌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 특별한 책 축제가 계속 발전하기를 바라기에 나오는 목소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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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책쾌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전주책쾌 기획단과 지역 도서관·동네책방 운영진인데요. 이들은 적은 예산과 자원 속에서도 행사를 일궈낸 주역입니다. 먼저, 1회 때부터 전주책쾌를 구상하고 기획해온 임주아 총괄기획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전주 동네책방 ‘물결서사’ 대표로, 전주의 독립출판 생태계를 꿈꾸며 이 축제를 씨앗부터 가꿔왔습니다. 임 기획자와 더불어 책방 에이커북스토어 이명규 대표, 복합문화공간 ‘리허설’ 유설 대표 등 지역에서 책과 문화를 일궈온 청년 기획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탰습니다.
이들은 MZ세대의 독서 트렌드에도 주목했는데, 요즘 젊은 층이 책을 자기표현과 소통 수단으로 즐기는 문화, 이른바 ‘텍스트 힙’ 현상에 착안해 전주책쾌를 기획했습니다. 예를 들어 갓을 쓴 여성 비걸이 춤추며 책을 소개하는 감각적인 홍보 영상을 만들어 SNS에 공유했고, 전주책쾌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문구를 담은 부채, 수건, 에코백, 티셔츠 등의 굿즈도 직접 제작했습니다. 책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젊은층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동시에 전주의 멋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었지요. 이러한 창의적인 마케팅과 브랜드화 노력 덕분에 “연간 1500만 명이 찾는 전주한옥마을에 정작 전주를 대표할 굿즈숍이 없어 아쉽다”는 평가 속에서, 책쾌 굿즈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효과도 거두었습니다.
전주시립도서관 본부와 지역 서점들 역시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도서관본부장은 책쾌의 취지에 공감하여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역의 다른 독립서점 운영자들도 기획 단계부터 함께 아이디어를 모았습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동네책방 주인들은 자원봉사자처럼 움직이며 행사 진행을 도왔고, 지역 예술가들은 재능기부로 디자인과 홍보를 거들었습니다. 이런 풀뿌리 헌신 덕분에 알찬 프로그램을 채울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전주책쾌는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낸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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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노력 뒤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예산 문제였지요. 사실 전주시는 출판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번 행사에 지원 예산은 충분치 않았습니다. 2024년까지는 그래도 시의 예산이 약 1억 5천만 원 수준으로 배정되었으나, 2025년에는 지원금이 5천만 원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삭감되었습니다. 축제·행사 분야 전체 예산은 늘었는데 유독 책쾌 지원만 줄어들면서, 기획단은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민간 후원사를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단은 포기하지 않고 지역의 서점, 기업, 기관들을 설득해 후원을 이끌어냈 고, 스폰서들의 작은 도움들이 모여 지금의 축제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막을 알고 난 관람객들과 시민들은 “전주시가 책의 도시라면서 정작 대표 책 축제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아쉬운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이 행사는 순전히 돈으로만 굴러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버텨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주책쾌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무엇보다 민관 협력, 즉 지역 공동체와 행정의 공동 노력이 중요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열정적인 기획단과 지역 서점 주인들의 헌신이 큰 힘이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자체의 제도적 지원과 적절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지는 행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산 지원 확대와 행정적 지원 강화가 뒤따른다면 전주책쾌는 더욱 탄탄한 기반 위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민간의 연대와 협력 역시 계속 중요할 것입니다. 다행히 전주책쾌를 통해 창작자와 독자들이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전국의 독립출판 창작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전주의 관람객들도 “내년에도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작자와 관람객의 연대는 축제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서로의 존재가 축제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지요. 창작자는 독자의 관심과 피드백에 힘을 얻고, 독자는 창작자를 직접 만나 책을 손에 쥐는 경험을 통해 더 깊은 만족을 얻습니다. 전주책쾌의 성공은 바로 이 쌍방향 연대의 힘에서 나옵니다. 앞으로도 창작자 네트워크와 독자 모임 등이 활성화되어, 책쾌가 1년에 며칠뿐인 축제를 넘어 일상 속의 문화 운동으로 퍼져나간다면 그 지속성은 배가될 것입니다.
결국 민과 관이 함께 손잡고, 지역의 기업 후원부터 공간 제공, 인프라 지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해야만 이 소중한 축제가 꺼지지 않고 오래 타오르겠지요. 전주책쾌를 준비하는 이들은 “지역은 북페어 불모지”라는 편견을 깨고 이만큼 성장시켰듯이, 앞으로도 민관이 함께 노력하면 전주를 명실상부 ‘책의 도시’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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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거듭 성공을 거둘수록, 자칫 행사의 성과와 헌신이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좋은 취지와 열정만으로 운영을 이어가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열정 페이로 버텼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문화행사가 되려면 정당한 보상과 처우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전주책쾌를 이끌어온 사람들이 본업을 제쳐두고 밤낮없이 일했음에도 금전적 보상은커녕 다음 해 예산이 깎이는 현실은 결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전주책쾌의 성공 뒤에 가려진 노동과 노력이 관성처럼 요구되는 분위기는 없어야 합니다. “어차피 저 사람들은 열정이 있으니까 또 해내겠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그것은 행사의 건강한 발전에 걸림돌이 됩니다. 희생에 기댄 운영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없으며, 또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관계자들의 열정을 ‘당연한 헌신’으로 소비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와 재정 지원, 그리고 합당한 보상이 따라줘야 할 때입니다. 예컨대 기획자들에게는 적절한 인건비 지급과 전문 인력 충원, 참가 창작자들에게도 일부 숙박·교통 지원이나 상징적인 원고료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예산이라도 사람에 대한 투자로 활용된다면, 모두가 더욱 마음 편히 축제를 준비하고 즐길 수 있겠지요.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메시지는 비단 행정과 주최측만이 아니라 우리 관람객과 시민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매년 여름이면 열리는 전주책쾌의 풍경이 어느덧 익숙해지더라도, 그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땀과 열정으로 가능해진 축제임을 기억하고, 우리도 책을 사고 후원을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축제는 비로소 선순환을 이룹니다. 책쾌가 지속되길 바란다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 마음을 보태고 책 문화를 지키는 주체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이 축제가 특정인의 희생이 아닌, 모두의 축복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해질녁 전주 남부시장 골목길을 비추는 노을빛 속에서, 저는 문득 이런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수백 년 전, 조선 시대의 책쾌들이 헐렁한 도포자락을 날리며 먼 길을 걸어와 전주 땅에 책보따리를 풀어놓던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는 현대의 책쾌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깃발을 들고 새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이어져온 책의 힘과 도시의 정신이 한데 어우러진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전주는 본래 출판문화의 뿌리가 깊은 도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던 곳이고, 완판본이라는 옛 책 문화를 꽃피웠던 고장이죠. 그런 역사적 자양분 위에 현대의 독립출판이라는 새싹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보니, 전주라는 도시가 지닌 문화적 가능성이 참 크다고 느껴졌습니다. 책쾌 북페어는 그 잠재력을 현실로 증명하는 작은 기적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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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매체의 힘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한 지역의 문화를 활짝 꽃피우는 힘이 아닐까요. 한 권 한 권의 책에는 저자의 혼과 이야기가 담겨 있고, 독자는 그 책을 통해 남의 삶과 생각을 공감하게 됩니다. 전주책쾌 현장을 둘러보면, 책이 매개가 되어 초면의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독자를 만나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한낮의 시장 골목이 순식간에 거대한 책의 마을이 되어버리는 광경 – 이것이 책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디지털 시대에 활자 문화가 퇴색했다고들 하지만, 정작 현장에 와보니 책은 여전히 사람을 끌어모으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더욱 따뜻하고 느긋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오직 책만이 줄 수 있는 그 느낌과 온도를 젊은 세대가 열광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봅니다.
전주책쾌 북페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작은 축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가치와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한 도시가 책을 통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독립출판이라는 새로운 물결이 지역 문화를 어떻게 풍요롭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참가자와 관람객들이 전주 곳곳을 누비며 사용하는 숙박비와 식비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이들이 느낀 긍정적인 느낌은 전주라는 도시가 진정한 책의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영향을 끼칠 겁니다. 저는 상상해봅니다. 언젠가 전주 곳곳의 서점과 도서관, 카페에서 책쾌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날을요. 1년에 한 번뿐인 행사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늘 책과 예술이 숨 쉬는 도시로 전주가 발전해나간다면 참 멋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축제의 모토 중 하나인 한 문장을 곱씹으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책에 살고 책으로 쾌하는 오늘, 우리 모두가 책쾌다!” 책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책으로 기쁨을 찾는 이 순간,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책쾌입니다. 전주책쾌 북페어가 이어가는 한, 그리고 그 정신이 퍼져나가는 한, 책의 도시 전주의 내일은 밝을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이 따뜻한 기적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닌 사랑으로 남아 앞으로도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다시서점,
김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