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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서점 Mar 29. 2024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을 떠올리며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을 떠올리며 


누군가의 발자국을 본다. 그 발걸음을 똑같이 따라 걷지는 않지만, 그 방향으로 걷는다. 누군가 뿌려놓은 씨앗을 본다. 울창한 숲이나 흐드러진 꽃밭을 걸을 때, 묵묵하게 씨앗을 심었을 이를 떠올린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 바라는 마음 없이 그저 자라날 것을 알며 하는 일에 관하여, 나는 아름답다고 말해왔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함부로 삶을 논하고 탄생과 죽음을 논하곤 했다. 당사자만큼 절실함과 절박함 없이, 그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언젠가 닿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러나 서 있는 자리마다 질퍽해졌다. 서툰 아름다움보다 생존과 생계가 더 중요하기에. 


먹고 사는 일이 넉넉해져야 괴로움에 덤덤해진다. 그러나 그 덤덤함이 먹먹함을 가리기도 한다. 언젠가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고, 언젠가는 사람이 주인이라 했지만, 전쟁이 나지 않았음에도 무수히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탓에 무뎌져 버리고 외면이 쌓인다. 사라지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라지는 것을 애달파했다. 그래서 사라지기 전에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팔기 위해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것. 그러나 우리는 삶을 쉽게 단정하곤 한다. 복잡한 인간의 삶을 단어 몇 개로,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확한 답을 내리고 틀에 박힌 삶을 양산할 수는 없다. 자유는 평등과 같은 말이 아니기에. 몇 마디 말로 눙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문제를 회피하고 있거나,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거나, 스스로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떠올린다. 씨앗을 떠올린다. 


숲과 꽃밭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어디나 숲이 있고 꽃밭이 있다면서 바라보는 마음을 고쳐먹으라 했다. 자세를 고쳐 앉으면 아름답게 보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숲과 꽃밭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결핍이 아니라 부재다. 부재를 외면하면 결국 부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지나간 어제와 다가올 내일이 만든다. 지난날을 결핍이나 열등감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내일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는 것은 부재다. 어제만을 위한 어제, 오늘만을 위한 오늘, 내일만을 위한 내일이란 단언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효율이란 말로 연결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이제 문화, 예술은 소비로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향유와 감상 정도로 끝나던 일들은 삶이라는 행동과 태도로 대체되었다. 아름다움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삶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서로를 연결하고, 서로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 자체가 결과가 되는 시대. 우리는 모두 당사자다. 


“그래도 이런 것 정도는 우리한테 있어야 된다.”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이런 것은 발자국인가, 씨앗인가, 문화인가, 예술인가, 아름다움인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어떤 태도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 어디로 걸을 것인가. 씨앗을 심을 것인가. 저 숲과 꽃밭을 누구와 어떻게 걸을 것인가. 



* 방방 12월호에 쓴 글입니다.



다시서점,

김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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