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내 투표는 꽃이라 불리지만, 지극히 단촐한 선택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창시절 사지선다로 고르던 답이 두 개에서 여러 개로 바뀐 것일지도요. 그중에 고르고 싶은 답이 없어도 스스로 최악이라 여기는 방향을 피하기 위한 차악이나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투표를 역성혁명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타인을 심판으로 도구로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실상은 시민이 설계에 참여하지 않은 채 혁명의 겉포장을 뒤집어 쓴 종이 두 장에 가깝습니다. 공약집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들을 적어놓은 생선 구울 때 기름 튀지 말라고 쓸만한 종이 정도고요.
여기서 말하는 혁명은 갈등이나 폭력이 아닌 사회 제도 개선으로써의 혁명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회의적으로 보거나 절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가까운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걷는 것이지요. 향기조차 나지 않는 종이꽃이지만 그 향기를 상상하는 것이지요. 매번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서요.
<오십에 읽는 주역> 저자는 인간을 대인, 소인, 비인.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나를 넘어 주변을 살피며 대의를 아는 사람이 대인, 나의 안위만 생각하고 이익만 쫒는 소인, 사람이 아닌 사람 비인. 우리는 오늘, 적어도 인간이 아닌 집단, 비인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티켓은 지켜야 돼요. 그러나 본 마음, 자기 정성을 다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내가 진심을 다했을 때, 상대방도 진심을 다한다면 예를 다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비인은 진심을 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의리까지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예의라는 단어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예가 없는 곳에 의를 지킬 수 없고, 의가 없는 곳에 예를 차릴 필요도 없습니다. “예의는 오고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예기> ‘곡례’에 나오는 말입니다.
진심을 다하지 않는 자들에게 마음까지 다 내어주지는 마시고요. 얼른 투표하시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향기없는 종이꽃이야 지지도 않고 욕심과 욕망을 쫒아 계속 접히겠지만은 우리는 수련한 웃음꽃을 지켜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