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다시서점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책을 조금 더 저렴하게 사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종로 4가 지하도상가에서 처음 문을 열어 용산구 한남동과 강서구 방화동을 거친 다시서점은 현재 공항동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책방이라니...'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걱정하시던 어른들과 친구들은 지금도 그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뭐 하나 끈질기게 하지 못하던 제가 10년 동안 서점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걱정 뒤에 숨어있던 든든한 응원 덕분입니다.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에 다시 서점을 하자!'를 모토로, 윤선애 님이 부른 노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에서 '다시'를 따 만든 다시서점은 저에게 매일 책을 만나는 '글자 속 꽃밭'이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지식의 민주화'를 위해 맨 뒤에서 버티는 곳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서점', '책방'이라 불리는 공간은 폐업이 줄을 잇는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장 같은 곳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탓에 '서점이 왜 필요하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됩니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서로 가진 정보와 언어체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충분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편을 가르고, 쉽게 단정 짓느라 지식을 유람하는 즐거움보다 존재 자체를 부정했는지도 모릅니다.
개념과 이해의 맞닿음이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합니다. 다시서점은 그동안 양극단 사이에서 조그만 가교 역할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서점이지만 공공 프로젝트를 하고, 책 판매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뭐라도 바뀌었으면 해서요.
서점은 업과 직업, 문화예술과 비즈니스가 끝나지 않는 전쟁을 되풀이 하는 곳 같기도 합니다. 생존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돈이 안 되는 책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해 처절하게 버티고 생존해야 합니다. 고독하고 서럽지만, 끝내 웃음이 나는 일입니다.
5평 남짓한 공간에서 꿈꿨던 서점의 미래에 가까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10년 만에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점에는 작가의 세계를 담은 책이 무수히 꽂혀있고, 크기가 작건 크건 간에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지기의 무궁한 세계가 펼쳐져있다는 걸요.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는 일의 총합을 삶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어떻게 내보이는지. 어떤 사람에게는 모호하게 보일지 몰라도 넓어지고 또렷해지는 나만의 세계.
서점은 그 세계를 켜켜이 쌓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곳입니다. 콘텐츠의 깊이와 넓이에서부터 우리가 함께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타인의 경험을 통해서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 없이 능숙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곳. 서점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만드는 곳입니다.
오차와 실수를 세밀하게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세계관을 견고하게 해 줄 역사와 맥락을 배우고 익히는, 오늘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면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응원합니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사람과 세상, 시대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여러분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서점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0년만 채우고 다시 생각해보자던 일이 하루 이틀 쌓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살아남으려 치열하게 버틴 탓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삶의 즐거움을 종종 떠올립니다.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여겼던 사람들도요.
부족하지만 이 책으로나마 그동안의 감사를 전합니다.
언제나 마음 맑은 하루 되셔요.
서울 서쪽 끝에서
다시서점,
김경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