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이라는 그늘을 걷어낸 평범한 다정함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던져진 '쯧쯧쯧'과 다정함이 담긴 '밥 먹었니'의 차이.
그 한 끗 차이가 무너져 가던 한 아이의 세상을 연둣빛으로 물들였습니다.
그때 나를 부축해 주던 어른들의 등을 기억하며 이 글을 시작합니다.
할머니가 떠난 자리는 태풍이 휩쓸고 간 들판 같았습니다.
나는 그 들판 한가운데에 꼼짝없이 어둠에 갇혔습니다.
아플 때 부를 사람이 없다는 것,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할 누군가가 없다는 것.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는 현실은 사무치게 두려웠습니다.
그해 봄바람은 유난히 거칠었고,
꽃샘추위는 기승을 부리며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은 등으로 쏟아지던 봄볕은 온기를 잃었고,
완연한 봄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황량한 들판에도 '봄날의 햇살' 같은 다정함들이 있었습니다.
" 밥 먹었니~~"
중학교 2학년 미술 선생님은 늘 그렇게 물어봐 주던 분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합니다.
'쯧쯧쯧...' 혀 차는 소리 안에 담긴 동정심.
심지어 "밥 먹었니?"라는 다정한 말속에도 그 '쯧쯧쯧'이 숨어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웃게 된 건,
선생님이 나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그저 평범하고 철없는 여학생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연한 평범함이 내게 드리워진 그늘을 서서히 걷어내주었습니다.
어느 미술 시간, 운동장 계단에 앉아 물이 한껏 오른 연둣빛 잎사귀들을 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부서지는 모습.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예쁘다'는 감각이 깨어난 순간이었습니다.
그 찬란함을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격려하며 연둣빛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습니다.
그 시절, 나를 키워준 건 대부분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내게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며 시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나도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혼자인 밤마다 책을 읽고 일기를 썼습니다.
울지 않으려 애쓰던 밤들.
누구도 나를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들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있다면,
그 밤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바람을 맞으며 세상을 봅니다.
창문 하나만 있어도 삶은 견딜 만해집니다.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인생을 시처럼 살고 싶다는 꿈은 그때 내 안에 심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텅 빈 나를 자주 만납니다.
온전히 채워져 본 적 없는 밑 빠진 항아리 같은 나를.
무언가를 계속 채워보려 하지만 항아리는 늘 비워집니다.
나는 이런 내가 싫어 몸부림쳐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빈자리는 ‘혼자’였던 시간이 남긴 흉터라는 것을요.
흉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마디마다 흉터를 끌어안으며,
그것이 떨쳐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나의 일부임을 배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른들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인생만으로도 벅찼을 청춘들.
그들도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었겠지만, 어린 나를 위해 기꺼이 등을 내어주었습니다.
나의 항아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나의 흉터는 날씨에 따라 선명함을 달리합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항아리의 빈 공간은
타인의 슬픔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되어 줄 수 있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도 "괜찮다"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업기만 하는 존재도, 업히기만 하는 존재도 없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부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래전 바람처럼 '시처럼 사는 삶'이 아닐까요.
나는 오늘도 시처럼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