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barista Nov 25. 2021

그 돈 다 어디 갔어요?

치매 환자라고 해서 행복했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는 건 아닌가 보다. 남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그는 다른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어르신 언제 제일 행복하셨어요?”     


그런 적 없었어. 이런 대답이 또 나올 거라 생각했으므로, 질문자의 눈과 입은 무미건조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환자가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세상에. 치매 환자의 행복한 기억과 드디어 만나는 걸까.     


“돈 많이 벌었을 때”

“그때가 언제예요?”

“은행 다닐 때.”

“아~ 젊은 시절 은행에 근무하시면서 돈 많이 버셨구나.”

“으응. 그때 돈 참 많이 벌었어. 좋았어. 콜록 콜록”     


가래가 만든 기침이 좋았어를 덮었다. 좋았어는 질식사한 것처럼 시들었다. 나빴어가 더 잘 어울릴 지경이었다. “자알~ 살아보세” 새마을운동 노래가 삽과 곡괭이 소리로 변해 거리를 파헤치던 시절. 그 때를 지금 어떤 사람들은 개발독재라고 부른다. 개발독재 시절, 부동산개발정보는 공무원들과 은행원들을 용하게 찾아 들어갔다. 오만과 편견 사이에서 누구는 약속했던 임금을 달라고 몸에 불을 붙였고, 누구는 땅 투기로 돈을 벌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벌었다.  

   

어르신은 기초수급자다. 돈이 많으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어르신은 그 많던 돈을 모두 잃었다. 돈을 벌어다 준 똑같은 방법으로 돈을 잃어갔다. 정보를 준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 사는 땅마다 그린 밸트에 묶였다. 행복을 가져다 준 돈은 그렇게 불행을 몰고 왔다. 그는 어르신의 그 시절 이야기를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백 번 정도 들었다.     


돈이 많을 땐 말과 행동에 힘이 들어갔단다. 아내와 자식들에겐 엄한 명령처럼 들렸겠지. 돈이 없을 땐 말과 행동에 분노가 서려있었단다. 식구들에겐 화풀이처럼 들렸겠지. 아버지의 엄한 명령과 화풀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의사가 되었다. 의사 아들들은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는다. 어버이날, 생신날, 엄마 제삿날에도 찾아오지 않는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바빠서 그렇단다. 요양보호사가 어르신 댁에 찾아오는 유일한 사람이다.      

무슨 심보인지, 그는 다시 질문했다.


“어르신, 그때 참 행복하셨겠어요. 그 돈 지금 어디 있어요?”

“...... 모르지.”     


어르신의 돈은 어디로 갔을까. 어르신의 행복은 어디로 갔을까.

     

“행복이란 좋은 말을 듣는데, 왜 난 매번 한숨이 나오지.”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욕창을 소독하면서 한 말씀하신다. 돈이고 자식이고 다 소용없다는 말씀도 조용하게 덧붙이셨다. 행복은 누군가의 한숨을 만들기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