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by 김다애
가상의 K 나라가 있다. 그곳에는 커피콩을 로스팅해서 전국의 카페들에 납품하는 4개의 대표 커피공장 A, B, C, 그리고 D가 있다. 최근 K 나라에 커피 열풍이 불자, 이웃 나라 P의 유명 커피 공장 E가 K 나라에 커피콩을 납품 하려고 한다. E는 전국의 가장 큰 카페 체인 10개에 자신의 커피를 납품하고자 연락을 했고, 커피숍 체인 '스몰월드’가 E와 거래하기로 했다.
이후 A, B, C, D가 ‘스몰월드’에 문제 제기를 해왔다. 알고 보니 ‘스몰월드’와 A, B, C, D 간의 계약서에 “국내에서 로스팅되는 커피콩만 사용한다"와 같은 조항이 있었다.
K 국의 대표 커피 공장들이 ‘스몰월드’를 상대로 취할 수 있는 법률적 조치는 무엇일까? 전통적인 분쟁 해결 방법을 원한다면, 이들은 ‘스몰월드’를 상대로 소 제기를 하여 재판을 통해 사법상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대해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커피 공장 A가 3심제[1]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면? A가 고려해 볼 수 있는 소송 외 '대체적인 분쟁 해결' (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체적 분쟁 해결은 그 외연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주로 언급되는 유형에는 중재(arbitration), 조정(conciliation), 중개(mediation) 등이 있다.
중재란 무엇인가? 조정과 중개와의 차이점은?
우리나라의 중재법 제2조 제1호는 중재를 “당사자 간의 합의로 사법상의 분쟁을 법원의 재판에 의하지 아니하고 중재인의 판정에 의하여 해결하는 절차”로 정의하고 있다. 만약 A와 ‘스몰월드’간의 계약 내용에 중재 합의 (arbitration agreement) 조항이 있었다면 A는 중재 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2] 이 경우 법원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1명의 중재인 또는 3명의 중재인으로 구성된 중재재판부가 심리를 하게 되는데, 단심제로 운용되는 중재 제도는 소송에 비해 분쟁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고, 심리 절차 및 판결이 비공개라는 장점이 있다. 또한 중재의 경우 중재 판정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조정과 중개와 다르다. 조정과 중개는 중립적인 제삼자가 분쟁 해결 절차를 돕는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한데, 두 개념은 국제법 및 국내법상 그 용어 사용이나 내용이 다양하다. 조정과 중개 외에도 주선(Good Offices) 등 다른 비사법적 분쟁 해결 방법들이 있는데 각 개념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국제중재란 무엇인가?
‘스몰월드가' K 국의 커피 공장 A, B, C, D와의 계약에 따라 P 국의 커피 공장 E와의 계약을 파기한다고 가정해보자. ‘스몰월드'와 E의 계약이 중재 합의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면, 또는 분쟁 발생 이후 별도의 서면으로 사후 합의가 있었다면, E 또한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국적의 당사자 간의 분쟁을 다루는 중재를 국제중재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신속성, 중립성, 중재인의 전문성, 비용 절감, 절차의 비공개 등 중재 절차의 장점을 언급했는데, 이 외에도 중재는 당사자가 중재인 선정 등의 중재 절차에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국제 분쟁을 다루는 국제 중재의 경우 어느 한쪽 국가의 법원 판단보다 중립적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용도가 높다.[3]
국제중재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국제중재는 보통 기관 중재나 임의 중재로 구분되는데, 기관 중재는 분쟁 당사자들이 중재를 관리하는 기관을 이용하는 중재를, 임의 중재는 기관이 관여하지 않고 분쟁 당사자가 정하는 절차가 적용되는 중재를 말한다. 대표적인 임의 중재 절차로는 국제연합무역법위원회(UNCITRAL.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의 중재 규칙이 있다. 기관 중재의 경우 각 중재기관의 중재 규칙 또는 규정에 따라 이루어지며, 가장 대표적인 국제중재기관의 예로는 국제상공회의소 (ICC. International Chamber Commerce) 중재 법원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대한상사중재원 (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이라는 중재 기관이 있는데, 1996년 이후로 중재 신청 건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대한상사중재원의 2016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 1만 건이 넘는 사건을 다루었다고 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앞서 중재를 위해서는 당사자 합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는데, 기관 중재나 임의 중재를 이용할지, 기관 중재를 선택했다면 어떤 중재 기관을 이용할 지에 대해서도 당사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중재는 그 내용에 따라 국제 상사 중재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와 아래에서 살펴볼 투자자-국가간의 분쟁 (ISD. Investor-State Dispute)으로도 나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서로 다른 국적의 당사자 간의 분쟁을 다루는 중재가 국제상사중재라면, ISD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자자-국가간의 국제투자 분쟁을 일컫는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중재를 위해서는 당사자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투자자-국가간 중재의 경우 투자유치국과 외국인 투자자의 국가 간의 양자간투자협정 (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나 자유무역협정 (FTA. Free Trade Agreement)의 분쟁해결절차 규정을 바탕으로 한다. ISD를 다루는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필자가 현재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ICSID. 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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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심제: 한 사건에 대해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쳐 세 번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심급제도.
[2] 중재 신청을 위해서는 서면상 중재조항이 필요하다.
[3] 반면, 중재인의 결정에 불복하기 어렵다는 점, 중재 당사자가 중재인 보수를 지급하거나 중재 기관 이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 등 중재 이용 시 고려해야 하는 단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