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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다미 Oct 23. 2024

당신의 감정이 느껴지지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소홀했던 나에게 쓰는 편지

"언제부턴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요."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게 되면서 나온 첫마디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거나 웃기다는 무한도전을 보더라도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사이코패스가 된 것처럼 감정에 따른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감정들이 내 가슴에서 삭제된 듯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설거지를 스스로 했고 방에 먼지 한 톨 하나라도 보이지 않게 청소를 했었고,

초등학생 때는 참여할 수 있는 대회는 모두 참여하면서 매 학년마다 반장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편두통과 위염을 친구처럼 달고 살았던 중학생 때는 아픈 기색을 티 내지 않으려고 진통제를 자주 먹었고,

고등학생 때는 어른이 되겠다며 독립을 하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어른 행세를 하고 다녔었다.


나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다.


"쟤는 예의도 바르고 참 착해.", "부모님은 자랑스럽겠어."

같은 말들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고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가 대단하고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대학생활의 반쯤 지난 시점에서

나에게 정신병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당시에는 진단을 받고 무기력하다가도,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내가 정신이 아프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분노감이 나를 지배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일정 시간을 진료를 받은 탓에 현역 입대는 멀어져 갔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는 의사 선생님의 제안이 나를 자극했었다.


'공황장애? 우울증? 그런 거 다 극복할 수 있어.'


약 섭취를 줄이고 의사 선생님께서 공부하셨던 자료들로 공부를 한 끝에 현역 입대를 하게 되었고,

어차피 전역하면 안 볼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다양한 성격을 시도하면서 전역을 했고,


그렇게 나는 정신질환을 극복했다.


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감정들을 꾹꾹 눌러 담았던 것뿐.

나는 괜찮아진 척 연기를 하며 극복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마주하면서도 '사진이 잘 나왔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드레싱을 하고 피부를 째고 약을 들이붓는 고통에도 '아, 아프구나.'

애인과 관계 중에서도 배드신을 찍는 배우처럼 좋아 죽겠다는 연기를 하면서 '언제 끝나지.'

라는 생각만 들뿐 감정 없는 돌멩이와 같았다.


군입대 전 정신질환을 경험할 당시에는 극복하려는 의지와 함께 많은 감정들이 함께였지만,

지금의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다양한 자극에 아무런 감정조차 썩어버린 시체처럼

하루의 반 이상을 숙면으로 채우며 살아있는 시간을 놓치며 살고 있다.


내 감정은 어디로 간 것일까

심장이 뛸 정도의 설렘은 뭐였지

닭살이 돋는 쾌락이라는 게 있었던가

맛있다는 표현은 달달하고 매콤할 때 쓰는 말이었던가

죽는다는 것은 꼭 슬픈 일인가


감정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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