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적으로 들어와야 할 것 같아"
34년 만의 일이었다. 인생의 3분의 1이 지나도록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버지를 되찾은 것은.
"어, 그래야지"
나의 답변도 간단했다.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도 어렸던 시절, 어머니는 나를 낳고 집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태어난 아이는 보살핌을 받지 못해 매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고, 어머니는 자기의 삶을 채 다 즐기지 못한 듯 밖으로 나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회식과 야근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의심하며 매일 회사를 쫓아가 결국 잘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먼저 벤 아이는 낙태까지 시켰어. 내가 손잡고 가서 애 지우라고 했는데. 그런데 너를 또 갖고 만 거야. 애 좀 잘 보살피라고 한마디 했더니 글쎄 나를 때려서 피가 철철 났었어!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내쫓았다니까!"
그게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던 걸까. 결혼을 하고 나서야 전해 듣게 된 어머니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은 내 몸에 흐르고 있는 그녀의 피를 모두 뽑아내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들 뿐이었다. 내가 그런 피를 가지고 있다니, 혹 내 자식들에게도 그 피가 흘러가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 전엔, 어떤 사정을 가졌을지 모르는 어머니라는 사람을 두둔하고 가엾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니!"
그리고,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속상함이 우선인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널 키우려고 입양했던 거야. 우리 사정도 안 좋아졌고, 아들이 질투해서 할머니한테 보내게 되기는 했지만"
직장도 잘리고, 큰아버지 보증을 서줬다가 쫄딱 주저앉게 된 아버지는 나를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큰어머니는 아들을 하나 낳은 이후 자식이 생기지 않았고, 아버지 혼자 나를 키울 수는 없으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형제간 입양을 결정하게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소포 부쳐지듯 나는 큰어머니네로 들어가게 되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은, 나를 향해 쏟아졌던 오빠의 질투였다.
"네가 우리 엄마를 왜 엄마라고 불러? 내 엄마야 네 엄마 아니고!"
"뭘 꼬나봐"
그리고 이어지는 발길질. 내가 3살쯤이었으니 오빠는 아마도 9살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갈곳 없어진 나는 할머니에게로 반품처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