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소송(2)

by 이다솜

아버지는 소장을 접수했다.


"그런데 왜 지금이야?"

"준이도 생겼고..."


손자가 생긴 게 이유라고? 이유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얼마 후 유전자 검사를 하러 직원이 찾아왔다. 신원확인을 마친 직원은 덤덤한 얼굴로 면봉을 꺼내 들었다.


"아 할게요."


나의 입은 상투적으로 벌어졌고, 직원은 면봉으로 뺨 안쪽을 문질러 내가 그의 친딸이라는 증거를 채취해 갔다. 머리카락 한 가닥과 함께.



돌도 되지 않아 할머니 손에 맡겨졌던 나는 큰어머니에게로 보내졌다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할머니에게로 반품되어 왔다. 그 후 큰어머니를 엄마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석과 설날을 매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었다. 엄마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으니까.


기다리던 그날이 오면, 나는 그간 쌓아놨던 말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언젠가는 엄마에게 '동생'이 갖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낳아주마 했다. 나중에 가수가 되고, 연예인이 되어 돈 많이 벌면 호강시켜 주겠다고 재잘재잘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매니저를 해주마 하고 엄마는 말했었다.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나마도 오빠가 없을 때나 가능한 대화였다.


'엄마'라고 부르는 걸 오빠가 보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질책이 날아왔다. '너네 엄마 아니라고 했지!' 그러면 큰어머니의 얼굴엔 당혹감이 떠올랐다. 나도 '아니야! 우리 엄마야!'라며 울고는 했지만, '그럼 너만 왜 여기 있는 것 같은데?'라는 오빠의 말에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때, 할머니를 따라 마을회관에 간 날이었다. 잠시 누워 있던 나를 보고 잠든 줄 알았던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낮추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야가 기영이 딸이여?"


기영이는 삼촌 이름이었다.


"그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득해졌다.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배신감. 분노.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밀려왔다. 그렇다면 나의 엄마는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차마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여전히 나의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종종 우울해졌다. 달을 봐도, 거울을 봐도, 책을 봐도, 흘러가는 구름을 봐도 문득 엄마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한 편으로는 이런 사연을 가진 나는 좀 우울해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게 처음 내가 나에게 가졌던 편견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행복해선 안돼.'


하지만, 행복하고 싶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껏 웃고 싶었다. 그러려면 엄마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든 다른 어른에게든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진짜 엄마가 엄마가 아닌 것이 되어버릴 테니까. 물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후로 엄마를 더는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기에, 엄마가 엄마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 꼴이긴 했지만.


'저기요. 그. 이거요.'


그 사건 후, 엄마를 부르는 나의 첫마디는 모호한 대명사 덩어리들로 뭉뚱그려 졌다. 그리고, 괜히 엄한 여자 어른을 보면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올라왔다.


"혹시, 우리 엄마 아닌가요?"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딸인데 보고 싶어서라도 내 주변을 한 번쯤은 배회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34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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