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쯤 지나 법원에 출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먼저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위해 서울가정법원에 출석해야 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서울에 계셔서 서울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날은 큰어머니가 함께 출석했다.
판사는 무채색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밀려있는 수많은 판결문들이 그를 재촉하기라도 하듯 빠르고 사무적인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원고는 피고와 친생자 관계가 아님을 인정하십니까?"
"네"
원고가 누구고 피고가 누구인지도 헛갈렸다. 그냥 기계적으로 '네'라고만 대답했다. 두세 번의 짧은 질의 끝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친생자가 아님을 확인했으니 이제 진짜 아빠의 친생자임을 확인하는 절차가 남았다.
재판이 끝나고 큰어머니는 고기를 사주셨다.
"너는 시어머니한테 연락 잘하지?"
"네"
"그래. 우리 며느리는 연락 한 번 살갑게를 안 해. 그렇게 하면 엄마 없이 컸다는 소리 들어. 그래도 너는 잘한다니 참 다행이야. 나는 아들을 뺏긴 거 같아서 너무 속상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도 한때는 엄마였던 사람의 입에서 생각 없이 나온 말이 나를 푹 찔렀다. 그러나 그날도 속상한 것은 큰어머니였다.
"저는 엄마 없이 컸어도 잘하니까 걱정 마세요."
날 선 나의 말에 큰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져 내린 듯 보였다.
"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잖니.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데. 어릴 때부터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내가 진짜 너를 딸로 키우고 싶었어. 그냥 너는 그래도 잘해서 다행이다 그런 의미였어. 어쩌면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니..."
"... 제가 엄마 없이 커서 그런 모양이에요."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사달이 난 것인지 지금껏 누구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지만, 이토록 순진한 언사를 더 참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딸로 키우고 싶었으나 딸로 키우지 않았고, 그래도 이렇게 모나지 않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할머니 할아버지 덕이었으니 적어도 당신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서는 안되었다.
한참의 설전이 이어졌으나, 그녀는 여전히 억울해했다.
"부모 없이 자라서 뭐 하나 할 줄 모르는 며느리를 탓한 거지 네가 엄마 없다고 그래서 못나게 자랐다고 그런 소리를 한 게 아니잖니. 넌 참 잘한다고 대견하다고 한 말이야."
내가 뭘 잘하고 있는지, 뭐가 대견한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의 대화는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피곤했다.
27살, 꽃다운 나이에 연애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도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내 맞선임이 그랬는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은 멀리하라고 하더라."
"... 왜?"
"몰라. 아무튼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게 좋대"
엄밀히 따지면,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도 아니건만 나는 그 앞에서 괜히 또 뾰족해지고 말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아무리 그래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은 좀 아니지 않아?"
그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고 나 역시 그 편견의 대상 중 하나라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쩌면 그들의 견해가 사실일는지도 모르겠다. 편견이란 결국 확률값으로 얻어낸 편하게 도출해 낼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하니까. 그들의 결론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