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소송(4)

by 이다솜

얼마 후 이번에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아버지와 친생자 관계라는 사실 확인)을 위해 이번에는 수원지방법원으로 향했다.


그날은 아버지와 함께였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판사는 몇 번의 질의를 끝으로 판결을 마쳤다.


"결과는 곧 나올 겁니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34년이 걸려서야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이었는데. 하긴 구구절절한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유전자 감식 결과가 이미 설명해 주었을 것을.


판결이 끝나고 우리는 별다른 말을 더 나누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이 부분에 대해선 늘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죄책감이었을지 창피함이었을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24살.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바로 평택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삼촌. 묻고 싶은 게 있어."


그때까지도 삼촌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 뭔데...?"


아버지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피어올랐다.


"삼촌이 내 아빠라며."

"..."

"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됐어"


그간 자연스럽게 삼촌과 더 연락을 자주 했으니 아마 내가 알 거라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채기는 했을 터였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몰라"

"나랑 닮았어?"

"... 옆모습은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알려준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그게 다였다. 그리곤 말을 돌려 버렸다.


"저녁 뭐 먹을래?"

"어. 그냥 아무거나."


그 뒤로는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애써 아빠라고 불렀다. 마치 불러서는 안 될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어색했지만. 그것도 하다 보니 적응은 되었다.


여전히 아버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계신다. 나도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와 부유하는 대화들만 나누었다. 큰어머니의 입을 빌려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본인 입으로 '네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어' 하고 말하기는 더 미안해서 못한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불쌍한 사람. 당신도 참 불쌍하게 세월을 이겨냈구나 싶다.


서른쯤 되었을 땐, 이런 과거들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는 했다. 더는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는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이 없었던 과거는 끈질기게 나를 물고 늘어진다.


이제는 그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


다음 편부터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가 홀로 떠안아야 해야 했던 삶의 단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아무도 기뻐해 주지 않았던, 누구도 슬퍼해 주지 않았던 아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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