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지 못한 이야기

by 이다솜

지금부터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맞다. 부모의 보살핌이 없었던 삶은 생각만큼 멀쩡하지 않았다.


그러니 가벼운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했던 가장 부러웠던 말은 '아. 엄마랑 오늘 또 싸웠어.'였다. '싸워도 좋으니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 누군가 '야. 없는 게 나은 부모도 있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떤 친구는 생리를 시작해서 축하파티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반면, 나는 생리대도 어떻게 차는 지 몰라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물어볼 어른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찼다. 그런데 거꾸로 뒤집어서 차서 피가 옆으로 샜다. 여자라면 알 것이다. 스티커가 아래로 가야 하는데 위로 왔으니 생리대가 제 기능을 할리 만무했다. 이건 그냥 웃으라고 한 소리니 웃어도 된다.


잠깐 웃었다면 이제부터는 마음을 좀 단단히 먹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도 조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써보겠다.


누군가 이 아이를 보살펴 주지 않는다는 건 그냥 쓱 보기만 해도 안다. 늘 혼자 다니고, 어디에서도 혼자 있다. 그런 아이는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옆집 오빠, 친척 오빠, 학교 친구들.


맞다. 당신이 생각한 그거.


1990년대 필자가 살던 곳은 아주아주 깊은 깡 시골이었다. 사람이 죽어나도 모를.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나보다 두 살 위인 옆집 오빠는 나를 아주 많이 괴롭혔다. 나에게 비비탄 총을 쏘기도 했고, 장난 삼아 때리기도 했다. 구덩이에 똥을 한가득 싸놓고 그걸 밟게 하기도 했다. 우물에 빠트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는데 할머니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 할아버지 담배나 할머니 돈을 훔쳐오게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로 해야 할 것은 또 있었다. 나를 벗기고 만지고, 자신의 물건을 또 나에게 비벼댔다. 그러면서 자기를 좋아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땐 진짜 뭔 소린가 싶었다.


옆집 오빠에게 형이 하나 있었는데 중학생이었던 그 형은 자기의 물건을 먹으라 시켰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나는 그것을 먹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왠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았고. 말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일전에 추석이나 설날이 기다려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기다려지지 않았던 이유가 하나 있다. 친척오빠의 추행 때문이었다.


나는 초등학생쯤, 그는 중학생쯤 되었을 때였는데. 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 내 뒤로 와서 늘 이상한 짓을 벌이곤 했다. 내 바지를 내리고 그의 물건이 닿을 때면 나는 절로 눈이 떠졌는데. 그냥 자는 척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다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친척오빠는 나에게 '좀 씻어'라고 했다. 내가 씻지 않은 것이 추행하기에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도움을 청할 곳은 여전히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두의 할머니 할아버지였으니까.


성인이 되어서 성폭행 상담 전화를 걸었는데. '그걸 왜 이제와 따지죠?'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증거도 없었다. 화가 나 당장 친척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따져 물었는데. '그때는 철이 없었다. 미안했다.'라는 사과로 끝이었다. 그걸 증거로 그때라도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무지했다. 그게 신고가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이미 앞에서 '그걸 왜 이제와 따지죠'하는 답변을 받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 후로 할머니에게도 친척오빠가 나에게 그런 짓을 했음을 밝혔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휴' 그게 끝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아끼지 않아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역시 할머니의 손자이니까. 더 말을 못 한 것일 거다. 아무튼 나의 소심한 항변은 별다른 소득 없이 그렇게 끝을 맺어야 했다.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의 소중이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그것을 한참 바라보며 웃었다. '야 XX가 담배 피운다.' 당시 그 말을 한 건 초등학교 6학년 오빠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뿐이랴. 다섯여섯 명이 돌아가며 나를 추행했다.


그나마 진짜 다행인 것은 다들 추행을 하면서도 성경험이 없던 아이들이라 강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걸 다행이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다.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살펴주는 이가 있었더라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겪어버린 걸. 되돌릴 수 없는 일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 놈들이 XXX였다.


그렇다고 남자가 모두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여자만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자든 남자든 그냥 그런 인간들이 있고 기회를 봐 언제든 약해 보이는 자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 거기에서 약자가 살아남을 별다른 도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약자에게는 좀 버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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