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도 스펙트럼은 넓어요. 누구나 그런 면모가 조금씩은 있고요."
"아. 네."
정확히 나르시시스트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상담을 마치고 나와 나르시시스트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다른 말이기도 한 나르시시스트 영상 관련 댓글엔 '당장 도망쳐'라는 말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 그래서 첫 번째 선생님이 계속 같이 살 건지를 물어봤던 건가.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가? 다들 도망가라고만 하니. 고칠 수 없다고 하니. 더 좌절스러웠다.
나는 '스펙트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주 고질적인 문제는 아니리라.
남편은 스스로를 '착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라니 말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풀어서 이야기해 주면 동의하는 부분이 꽤 많았다.
'공감 능력 없음' - 부족이 아니라 없다에 가까움
'상대 비난' - 칭찬은 하나도 없음
'상대의 감정 무시' - 피해의식 등으로 치부
'자존감 낮음' - 그래서 반대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려서 봄
남편은 이 모든 것을 인정했다.
'다만 누군가를 이용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손해를 보더라도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은 억울하다.'라는 게 남편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당신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내가 노력하겠다는 사과를 받았다.
그래서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비난 말고 칭찬'부터 도입해 보기로 했다. 여기에서 '칭찬'에 대한 오해가 꽤나 있었는데 여기에서 말한 칭찬은 장점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매일 그 어려운 것을 하라는 게 아니었다. 상대의 '긍정적'면모를 바라봐 주자라는 것이었다.
이는 필자 역시도 함께 하기로 했다. 그간 당한(?) 것이 많아 필자 역시 칭찬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던 터였다.
'오늘은 머리가 잘 어울리네'
'미인은 잠꾸러기래'
와 같은 남편의 변화가 오늘로써 또 3일 차 진행되었다.
오늘로써 또라고 말한 것은 사실 이전에도 이러한 변화는 3일까지 진행된 일은 꽤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또 과거의 비난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돌아갈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매번 속고 또 매번 믿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사과하고, 변하겠다는 의지는 보여주니까.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이야기해 주면 된다. 한편으로는 이게 사람을 바꾸려는 내가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럼 내가 나르시시스트는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이건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4년 가까이 칭찬 한 번 없이 내내 비판만 하는 건, 공감 없이 상대의 감정을 피해의식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학대에 가깝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 학대라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그간 그걸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ADHD 약을 먹으면서 그 불편한 사실들을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 이 불편한 사실들이 우리 부부 사이에 꽤 많은 '싸움'을 일으켰을지언정 이겨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어본다.
나르시시스트라고 정의해서 미안하고, 나는 여전히 당신의 변화를 기다리겠다.
*남편의 동의를 받고 쓰는 글임을 말씀드립니다.
P.S.
이 글을 쓰고 한동안 많이 앓았습니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이렇게 후폭풍이 몰려와 제 몸을 덮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이게 또 하나의 발판이 되었을 거라 믿습니다.
이번에는 그걸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의 어떤 무례한 행동에도 쿨하게 넘기는 내가 단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은, 내가 나를 그런 걸 당해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요.
제 글을 보고 모두 그런 자신을 이겨내셨기를 바랍니다.
저도 함께 헤쳐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