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어도 잘하는 게 있을 법 한데. 그런 이야기는 단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지금껏 그걸 모르고 산 나 자신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반대로 나는, 남편에게 늘 좋은 말만 해주었다. 잘생겼다. 잘한다.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한다. 고맙다. 오빠는 어쩜 못하는 게 없냐 등등.
이에 대해 남편은 본인이 바라던 '여성상'이 있었는데(필자는 그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청소와는 담을 쌓고 살았고, 요리에 흥미도 없었다. 그래도 일은 열심히 해서 생활력은 있었다.) 신혼 초에 그게 이뤄지지 않으니 너무 스트레스였고 힘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남편은 약을 먹고 변화된 나의 모습을 아주 흡족해했다. 너무나 꼼꼼하게 정리정돈과 청소를 하는 모습에 기뻐하며 청소 회사를 차릴까?라고도 했다.
새롭게 찾아간 두 번째 병원. 여기 선생님은 참 말씀을 잘 들어주셨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들어서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 주책이라 생각했다.
"마음은 좀 어떠셨어요?"
그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 사실 나에게 그런 말을 물어봐 준 사람이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는 괜찮은지' 따위의 질문들.
"왜 눈물이 나나요?"
"저에게 그런 말을 물어봐 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게 너무 슬프네요.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청소도 잘 되고, 너무 좋아요. 남편도 좋아하고요. 용량을 늘릴 수 있나요?"
"용량이 부족한 것 같나요?"
"체감적으로 점점 약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용량을 늘려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곳곳에 묻은 먼지들과 함께 남편의 만행들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오빠, 앞으로는 나한테 비난, 비판 절대 하지 마."
구구절절하게 쏟아놓는 나의 말에 남편은 무릎을 꿇고 울며 사과를 했다. 자신이 그런 줄 몰랐노라고. 다시는 그렇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같은 날 저녁. 고기를 구워 먹다가 술이 떨어져 내가 술을 사 오겠노라 하고 술을 사 왔다. 술을 사들고 온 나에게 남편은 '아. 뭐야 그거 맛없는데'라는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그건 남편이 좋아하는 술이었다.
"오빠 이거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어? 맞긴 하는데..."
"근데 왜 그렇게 말해?"
"아. 그냥 농담이었어."
"농담으로라도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 풍기지 마."
평소의 나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지만, 이제는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오빠가 만일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단 하나라도 할 줄 안다면, 그땐 그런 이야기해도 좋아.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적인 말만 하는 건 내가 더 봐줄 수 없어."
"알겠어."
그 이후로도 남편은 여전히 나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다만, 부정적인 이야기를 줄이는 편을 택했다.
나는 또, 그것만으로도 노력이라고 고마웠다. 오빠도 어린 시절, 받은 게 그런 비난뿐이라 할 줄 아는 말이 그런 말 뿐이겠지 하고 가엽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번 상담에서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남편이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아요."
"네? 나르시시스트요?"
충격에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의 동의를 받고 쓰는 글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