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기저기에 나르시시스트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 나는 나르시시스트와 결혼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던 중 의사 선생님께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아마도 남편분이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아요"
앞서 필자의 스토리를 본 분이라면 내가 나르시시스트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을 인간이었다는 건 뻔히 보일 것이다. 잘 맞춰주고, 잘 웃고, 잘 들어주고. 상대의 말이 다 맞고... 등등.
너무 좌절스러웠다. 내 인생 2막도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믿고 싶지 않았다. 혹시 내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했다. 그럼 난 어떻게든 고칠 용의가 있었으니까. 내가 결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인물이 아니니까 어쩌면 그 영향으로 내가 못난 사람이 된 것이라서 이런 결과물이 도출된 것이기를 바랐다.
처음 정신과에 가게 된 것은 남편의 말 때문이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청소를 못해'
'여기 좀 치우고 좀 하지'
'당신은 요리 못하잖아'
그러다 부부상담 프로그램을 봤다. 와이프가 ADHD라서 집안 청소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나 ADHD일까?'
라는 나의 말에
'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게 남편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는 ADHD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 주셨다. 이것도 당황스러웠다. 설마 했는데 진짜 ADHD였다니.
"선생님. 청소가 너무 어려워요."
"지금까지는 괜찮았나요?"
"아뇨. 어릴 때부터 항상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했어요. 어지럽다고. 그런데 최근에 TV를 보고 혹시 나도 ADHD가 아닐까 싶어서 오게 됐어요"
"그러면 갑자기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어... 남편이 아이들이 있으니까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렇군요. 그럼 청소가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어. 사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거 왜 치워야 하나 싶고."
"그럼 우선 약을 최소한으로 드려볼게요."
그게 나의 첫 상담 내용이었다. 그렇게 콘서타 18mg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고는 신기하게도 몸소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보이고, 정돈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정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남편의 질책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였는데 그간 남편이 나에게 질타만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나에 좋은 말은 칭찬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도 나에 대해 질타만을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방문일, 나는 그 내용들을 선생님께 쏟아놓았다. 공감능력도 없고, 비난만 쏟아내는 남편에 대한.
처음 아이를 출산할 때, 남편은 나에게 '누구나 아이 낳는 거. 당신은 참 겁이 많다.'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후에도 아파하는 나에게 '엄살은'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남편이랑 계속 같이 사실 건가요?"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하죠?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요."
그렇다. 결혼 3년 차. 나에겐 핏덩이가 둘이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사랑해요."
그래서 병원을 바꿨다. 남편이랑 계속 살 거냐니.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동의를 받고 쓰는 글임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