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고파서

by 이다솜

어느 순간 나는 내 의견을 지우고 살았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나?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터득했던 것 같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랄까.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참 좋아해 줬는데. 우습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는 입버릇처럼 그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래 그러자' '아 정말?' '웃기다.' '진짜?' '와 너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어.' '그랬구나.' '응.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나 내 생각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 거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거기에 동의해 주면 더더욱.


또 난, 싫어하는 게 없었다. 싫어하는 음식도 없었다. 나의 기호는 철저히 무시한 채 그게 누구 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진짜 친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변에 이상한 사람만 꼬였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이걸 무조건적 공감이라 해야 할지, 무비판적 수용이라 해야 할지. 아무튼 관계에 있어 서로에게 건강한 태도는 아니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는 그런 나의 태도를 약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웃기지 않는데 웃는 것 같아', '왜 입만 웃어?', '너 리액션 진짜 좋긴 한데 웃고 싶지 않으면 안 웃어도 돼.'와 같은.


어찌 되었건 내 주변엔 사람들이 언제나 많았다. 그게 본질적인 외로움을 해소해 주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위안은 됐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내가 썩 기껍지는 않았다. 행복하지도 않았다. '나'로 살아간다기보다 '그들'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지금도 그걸 온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생각 없이 맞장구 쳐주는 버릇이 남아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필요한 태도일 수 있지만, 지겹도록 그렇게 살아 봤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쉽지가 않다.


이제는 그게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걸까 봐 두렵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그림자는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직면하면 좀 나아진다던데. 정말일까? 나는 나를 온전히 다 마주해 낸 것일까?


인생에 고난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도 그냥 그중의 하나를 겪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모두 다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싶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제 와서 그게 별거라고 한다 한들, 어쩌겠는가. 이미 벌어진 것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앞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갈 뿐이다.


PS.

가족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된 것은 서른쯤이었다. 내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을 때 그래도 할머니에게는 연락해야지 싶었다. 그리고 서른둘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다. 온전히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로 지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런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욕심부린다 해도 될 것 같지도 않다) 이제는 나에게도 가족이 생겼으니. 내 가족에게 집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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