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미끈한 발레리나
이상교
오, 미끈한 발레리나
싱크대 서랍 속에
누워 있었구나
발레 슈즈도 신지 않은
뽀얀 맨발
한 묶음 집어
손으로 톡톡 키를 맞추고
물 끓는 냄비에 넣자
스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둥근 치마가
꽃처럼 펼쳐지다
보글보글 소리에 장단 맞춰
사뿐히 뛰어오르기
한 바퀴 휘돌아 멈춰 서기
새하얀 함박웃음이
동동 떠올랐다 넘친다
체에 받쳤다가
차가운 물에서
새초롬
매끄럼
말끄럼
아름다운 국수!
이상교『예쁘다고 말해 줘 』 문학동네 2014
어릴 적엔 국수보다 라면을 더 좋아했다. 라면도 풍족하게 먹기 가난한 시절 국수와 라면을 섞어 끓이기도 했다. 누구 그릇에 라면발이 더 많이 들어가나 눈을 부릅뜨고 보던 시절이 그립다. 나이 들고 보니 자극적인 수프로 맛을 낸 라면보다 담백한 국수가 더 좋다. 강추위가 물러가고 어제 헤이리 근처에 있는 국숫집을 찾았다. 10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우린 첫 손님이다. 국수를 먹기 위해 아침에 물 한잔을 먹고 배고픔을 꾹 참았다. 우리 보다 먼저 식탁에 앉아 있는 햇살이 우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일하시는 분들의 첫인사를 반갑게 듣는다.
요즘처럼 날이 찬 겨울에는 멸치로 육수를 낸 잔치 국수가 제격이다. 화려하지 않은 재료로 이렇게 마음까지 녹이다니,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알겠다. 정갈한 국물에 적당하게 쫄깃한 면발 위로 야채와 김가루, 유부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 먼저 국물을 먹는다. 깊고도 맑은 국물이 마음을 먼저 데운다. 추위에 떤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국물맛이 좋다며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올린다. 면발은 5월의 볕처럼 부드럽고도 따스하게 목구멍으로 호로록 호로록 연신 들어간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국수 또한 먹을 때 행복하다. 뜨거운 물속에서 춤을 췄던 국수는 입속에서, 마음에서 다시 잔잔한 춤을 춘다. 국숫집에서 나올 때는 꽁꽁 여몄던 단추 하나쯤은 풀어져 있어도 괜찮다. 추위와 맞짱 떠도 이길 것 같은 마음까지 든다. 다음에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국숫집을 찾을 것이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아껴두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