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스 루리, 『미쉐린 타이어는 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겼을까?』
예전에 같이 일했던 마케터 동료는 MD와의 협업 과정에 대해 다소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상품을 소싱해 온 MD가 해당 상품을 팔아달라고들 찾아오는데, 어떻게 팔지 전략이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팔아달라고 한다는 거였다. 각 팀 간의 소통을 조정하고 업무를 총괄하는 리더가 부재한 상황이었다.
상품기획과 마케팅이 이러할진대 브랜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의 유저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할지, 우리의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인식되어야할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무 얘기도 없었다. 앱 스토어에는 점점 이 프로덕트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리뷰가 하나 둘 올라왔다.
전략도 소통도 없이 일하는 사이 회사는 어디로 가는지 두둥실 허공에 떠도는 느낌이었다.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를 열심히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다보니 일의 아귀가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고서야 상품기획과 마케팅, 프로덕트 개발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맞물려 돌아가야한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팀이 정비되고 어느 정도 프로세스를 만들어나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할지를 모른다.
이 책에서 글로벌 마케팅 사례들을 접하면서 이러한 개인적인 히스토리가 떠올랐다. 책에서는 브랜딩/마케팅 전략/리포지셔닝 등 총 7가지 범주로 마케팅 스토리를 나누어 설명했다. 하지만 핵심은 같다고 생각한다. 고객을 중심으로 그들의 경험을 분석하고, 그 경험을 개선시킬 제품을 공급하고, 여기에 맞게 메시지를 설계하는 거다. 제품이 우선일 수도 있고 창업자의 신념, 또는 마케팅 전략이 먼저일 수도 있지만, 각 부문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책에 제시된 드비어스 사례만 봐도 그렇다. 다이아몬드가 팔리지 않자 그들은 기존 상품을 리포지셔닝하기로 했다. 다이아몬드를 '프로포즈'라는 특수한 상황에 빠져서는 안되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렇게 상품이 재정의됐고 그에 따라 이러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광고 캠페인이 제작됐다. 또 보석을 그저 보석으로만 보지 않고, '영원함'이라는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로 탈바꿈시키면서 그들의 타겟층인 젊은 남녀가 다이아몬드를 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인상깊게 읽은 또 다른 사례는 기네스와 스타벅스다. 두 회사의 사례 모두 고객경험을 중심으로 한 충성도 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네스는 기네스의 고객들이 술을 마시는 바로 그 공간에서 더 나은 경험을 하게 만들어줬다. 술을 한잔 하다가 토론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기네스북을 보면서 토론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기네스북은 술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줬을 거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사람들은 술을 한잔 더 했을테고, 기네스의 매출도 높아졌을테다. 이 경우 마케팅 수단인 기네스북이 상품을 뛰어넘어 고객 경험 자체를 개선시킨 셈이다. 술 자체만 바라보지 않고 술을 즐기는 고객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기에 나온 해법이었다.
갓 볶은 원두의 커피향을 강조한 스타벅스 역시 마찬가지다.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고객들에게 커피향은 좋은 커피 맛만큼이나 강력한 메시지이고, 좋은 경험의 일부이다. 커피향이 사라지고 무색무취한 체인점이 되어가는 스타벅스의 모습에 개탄한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경영 일선에 복귀한 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슐츠의 지휘 아래 스타벅스는 양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갓 볶은 커피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탈바꿈했다. 역시 제품이나 매출만 따지는 게 아니라 커피를 즐기는 고객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생각했기에 이런 해결책을 실행시킬 수 있었을 거다.
어떤 기업은 오케스트라처럼, 어떤 기업은 재즈 밴드처럼 돌아간다고들 한다. 철저한 계획과 지휘 아래 실행을 하는 조직이 있고, 큰 그림 아래에서 각 구성원이 자율성을 발휘하는 조직이 있다는 얘기다. 어느 쪽이든 큰 그림이 없다면, 각 팀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상품이 곧 메시지가 되고, 메시지가 곧 상품이 되지 않는다면 고객들은 결코 우리의 연주를 듣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