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서 하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하고 또 자신 있습니다."
콩 팀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는 달리 팀원들의 표정은 굳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킴 상무가 제시한 프로젝트는 다소 황당도 하고 전대 미문의 사업이었으며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작지 않은 규모인 데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젝트는 콩 팀장 부서의 업무와 큰 연관도 없었습니다. 킴 상무 휘하 6개 팀 중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왜 콩 팀장이 손을 들었을까 팀원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이 어려운 사업을 수행할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콩 팀장은 도대체 왜 쓸데없는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손을 드는 거야, 우리를 죽이려고 그러나?", "콩 팀장이 아직 임원 승진할 때가 된 건 아닌데, 이해할 수가 없네.", "이렇게라도 킴 상무이게 잘 보여서 2-3년 후라도 승진 출사표를 던지려고 하나?" 팀원들은 사무실 뒤편 후미진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그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모두가 뜨거운 감자로 여기는 이 프로젝트를 콩 팀장이 덥석 물은 때는 10월이었습니다. 벌써 내년도 사업계획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한 달 후면 인사 평가가 시작되는 시점이었죠.
콩 팀장은 벌써부터 고민이 많았습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때인데 6개 팀 중에서 콩 팀장의 팀이 크게 두각을 나타낸 바가 없었고 오히려 업무성과로 보면 하위로 밀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소심한 콩 팀장은 팀원들의 인사평가가 걱정되었습니다. 또 내년 조직개편으로 팀 편제가 바뀔 거라는 소문도 걱정이었죠.

콩 팀장 회사의 인사고과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A, B, C, D 4개 등급별로 총인원을 순서대로 15%, 30%, 40%, 15% 비율에 맞춰 평가를 부여하는 것이죠. 일단 팀장들이 팀원의 고과를 매겨 올리면 상무가 전체 6개 팀의 전체 팀원들 고과를 최종 조율해 확정합니다.
보통 팀별로 고과 등급별 비율을 안배하는 다른 상무들과는 달리 킴 상무의 인사평가는 독특했는데, 업무성과가 좋다고 판단한 팀의 팀원들에게 좋은 인사평가를 몰아주는 스타일이었죠. 자칫하다가는 콩 팀장의 팀원 7명이 모두 CDCD의 낮은 고과를 받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개인의 낮은 고과는 낮은 성과급으로 이어지고 내년 성과급이 나오는 달에는 옆의 동료가 수백만 원의 돈을 더 받아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콩 팀장은 킴 상무의 약간 황당한 프로젝트 제안을 듣는 순간, "역전의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킴 상무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 그러면 킴 상무 스타일상 우리 팀원들은 무조건 최상급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도 킴 상무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죠.
킴 상무의 제안은 황당하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고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하면 실현이 가능한 사업이었습니다. 콩 팀장은 팀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회사의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으니 우리 열심히 한번 해 봅시다." 콩 팀장은 '인사평가' 얘기는 숨기고 사업의 명분과 당위성만 팀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습니다. 콩 팀장 스스로는 이 사업의 '개떡'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콩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근 1년에 걸쳐 킴 상무가 원하는 바를 추진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콩 팀장이 이 사업을 맡은 지 1개월 후 진행된 그 해의 인사고과는 당연히 콩 팀장의 팀원들이 모두 AB를 싹쓸이했습니다. 콩 팀장의 부서가 아무도 맡지 않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기분파 킴 상무는 흡족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그다음 해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 콩 팀장의 인사고과도 A였을까요? 킴 상무가 임원 승진 후보로 강력하게 미는 수석 팀장이 A를 받았고, 콩 팀장은 B를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팀원들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콩 팀장의 선택에는 미처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배경, 이유들이 있습니다.
콩 팀장이 명확하게 선택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야 가장 바람직한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되겠지만, 밝히지 못하는 이유들도 가끔씩 생깁니다. 수년이 흐른 후에도 콩 팀장은 팀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겁니다. 얘기해도 팀원들이 믿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후일 얘기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겠죠.
팀장이 이상한 오더를 덥석 물으면 도대체 저 인간이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팀장에게 소주 한잔 청하면서 슬쩍 물어봐도 좋겠고요. 팀장이 '진실'을 얘기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