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쪼옴!!!" 하마터면 이렇게 외칠 뻔했습니다. 콩 팀장이 이 대리의 보고서를 수정하는 순간이었죠.

보름 전 이 대리는 콩 팀장에게서 오더를 받았습니다. 작년까지 잘 나가던 상품 A의 판매가 급감하자 그 원인을 분석하고 매출 증대 방안을 강구해 보라는 것이었죠. 상품 A가 시장에서 판매 동력이 급 꺼진 데 대해 회사에서 크게 우려를 하기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장에 출시된 지 1년 남짓 된 상품 A의 상품 자체 퀄리티, 경쟁사 제품과의 경쟁력, 가격, 프로모션, 유통구조, 고객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개선방안까지 도출하려니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그래도 이 대리는 집중도를 높여 13일 만에 보고서를 완성해 콩 팀장에게 이메일로 보고합니다. 이 보고서를 콩 팀장이 벌써 사흘 째 '빨고' 있는 겁니다.
이 대리의 보고서 작성 솜씨는 사내에서도 탁월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전임 팀장은 이 대리의 보고서라면 토씨 하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패스해주는 굳건한 신임을 보일 정도였죠.
평소 본인 역시 보고서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이 대리는 상사가 자신의 보고서를 수정하는 것을 무척 자존심 상해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내가 썼다고, 그 누구도 나처럼 잘 쓰지는 못해, 이 보고서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어.' 늘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콩 팀장은 이 대리의 매출 증대 방안 보고서를 받은 후 사흘 동안 빨간색으로 첨삭을 하질 않나, 또 일부 내용 보완을 지시하지 않나, 이 대리는 속도 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중에는 콩 팀장이 아예 보고서를 자신이 직접 수정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콩 팀장이 왜 이토록 보고서를 조몰락거리며 이 대리를 귀찮게 하는 걸까요?
보고서를 보는 시각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이 대리는 자신이 시장을 분석하고 작성했기에 자신이 보고서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콩 팀장은 이 보고서의 주인이 팀장인 자신이라고 생각하죠. 그리고 본부장까지 보고될 이 보고서는 나아가 자신의 상사인 킴 상무의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콩 팀장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맨 처음 보고서 작성 오더를 내린 본부장이 이 보고서의 최종 검토자입니다. 본부장에게 보고를 하는 이는 킴 상무와 콩 팀장이고요. 아마도 둘이 함께 본부장실로 들어가 보고하고 질문도 받을 겁니다. 물론 일부 본부장은 작성 실무자를 불러 직접 보고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 보고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본부장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가가 아니라 이 보고서의 내용과 향후 실행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입니다. 본부장이 책임을 물을 대상은 1차가 킴 상무, 2차가 콩 팀장 즉, 보직자들입니다. 이 대리는 책임 대상이 아닙니다. 이 대리는 킴 상무와 콩 팀장의 관리 감독하에서 그리고 이들의 멘토링 하에서 작업을 한 실무자에 불과합니다.
콩 팀장은 이 보고서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하고 또 자신의 1차적인 인사권자인 킴 상무도 함께 책임져야 하므로 본부장이 흡족할 만한 보고서가 되도록 조몰락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이 대리의 뒷모습을 보자 콩 팀장은 돌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일을 잘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 결과에 대해서도 자존심이 강하니까요. 콩 팀장은 10년 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자신도 이 대리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콩 팀장은 오후께 이 대리와 커피 한 잔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그 고생한 보고서를 내가 왜 열심히 빨고 조몰락거리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마... 하는 생각에서죠.
10년 전의 콩 대리는 상사에게서 이런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분한 마음만 가득했고 상사에 대한 불만도 커졌었죠. 대화로 서로 오해를 쉽게 풀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채 서로 불신만 키웠던 옛날이 콩 팀장은 늘 아쉬웠습니다. 소심한 콩 팀장은 대범한 이 대리가 부디 잘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