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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아쿠아가든,
물빛 아래 가라앉는 도시의 오후

by 데이트베이스

잠실은 도시가 가진 상징을 집약한 동네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대형 쇼핑몰과 호텔, 백화점, 아쿠아리움 등 거대한 소비의 집합체가 하나의 복합 구조물처럼 배치되어 있다. 서울의 분주한 스카이라인을 완성하는 롯데타워. 그 아래, 또 다른 리듬의 층위가 고요히 숨겨져 있다.


‘아쿠아가든카페’는 롯데타워 지하 1층에 자리한다. 지상은 높이를 향해 올라가는 과시적인 자본의 상징이라면, 이곳은 오히려 땅 아래로 수평적으로 펼쳐진 조용한 은닉의 영역이다. 홍적세 시절, 인류는 나무를 올라 시야를 확보하며 위협을 감지했고, 물가 근처에서는 자원과 식량을 확보하며 안정감을 찾았다. 하늘 높이 솟은 롯데타워가 ‘나무 위 시야’의 집약이라면, 이곳은 ‘수면 아래 자원’의 구현이다. 이처럼 지하에서 펼쳐진 아쿠아가든카페는 긴장을 풀고 천천히 머무는 감각을 제안한다.


카페 바로 옆에 국내 대표 아쿠아리움이 위치해 있다는 점은 처음엔 다소 의아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관람한 직후라면, 이곳의 수조는 상대적으로 작고 단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공간은 애초에 방향이 다르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이 길을 따라 이동하며 감상을 유도하는 일방향 전시형 구조라면, 아쿠아가든카페는 좌석에 머무는 체류형 구조로, 감각이 천천히 스며들도록 설계돼 있다. 다양한 수조는 테이블 옆에 밀착되어 있어, 자리에 앉는 순간 마치 나만의 반려 물고기를 입양하는 설렘을 선사한다. 감상보다는 동행에 가까운 거리감. 그래서 아쿠아가든의 수조는 ‘작다’기보다 ‘가깝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잠실 아쿠아2.jpg 아크릴 테이블과 좌석이 수조와 붙어있는 아쿠아가든 내부 공간.


카페 내부는 투명한 유리 수조와 투명한 가구, 그리고 군데군데 이어지는 수목으로 구성돼 있다. 앉을 자리를 잡으면, 그 순간부터 각 테이블은 각자의 ‘반려 수조’를 갖게 된다. 수족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앉아 있는 경험. 라이브러리에 앉아 책을 고르듯, 가장 마음에 드는 물고기를 찾을때 까지 한 마리 한 마리 눈을 맞춘다. 사람들이 저마다 물속의 생명과 함께 머물고, 말없이 감각적으로 교감한다. 한쪽에서는 혼자 조용히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거나, 커플은 유리 수조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곳의 수조는 보는 것이 아니라, 곁에 두는 것이다.

잠실 아쿠아.jpg 음료를 즐기며 물고기를 관람하는 장면


전체 공간은 생각보다 넓다. 하나의 큰 홀이 중심을 이루고, 그 안에 수조를 기준으로 자리가 둘러싸여 있다. 중심부에서 퍼져 나가는 포켓 공간들은 마치 숲을 지나 물가를 탐색하는 작은 동굴 같다. 수직의 시선은 수조 너머의 수목 장식으로 부드럽게 마무리되고, 바닥과 천장은 어두운 컬러로 감각을 낮춘다. 밝은 조도와 대비되는 깊은 차분한 색감은 마치 잠긴 공간처럼 체류의 몰입도를 높인다. 의자와 테이블은 투명하게 설계돼 공간 전체가 수조 속에 잠긴 듯한 인상을 만든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입체적 장면이다.


비 오는 날이면 이곳의 정서가 더 명확해진다. 물이라는 감각이 실외에서 실내로 연장되며 하나의 감정선을 완성한다. 잠실이라는 장소에서, 이 카페는 데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닿는다. 식사, 영화, 쇼핑, 전시 등 온갖 기능이 포개진 뒤, 조용히 감각을 가라앉히는 공간. 물고기의 유영을 따라 흐르는 시간을 보며, 우리는 도시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쿠아가든카페의 화룡점정은 '일상의 감각을 이탈시키는 방식'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너무 복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끄럽지 않고, 어둡지 않으며, 과장되지도 않는다. 그저 유리 수조와 물고기의 존재만으로도, 이곳은 분명히 낯선 층위를 만들어낸다. 그 낯섦은 불편함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수직적 상징의 아랫자락에서, 평면의 가장 조용한 감각으로 이어지는 리듬. 도심 속에서 이토록 느긋한 물멍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은 존재의 의미를 묵묵히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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