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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Aug 22. 2018

월급쟁이 딴짓 인문학

세계최고봉에 오른 월급쟁이 8단의 인생 문턱 넘기 

졸필이다. 처음부터 미천을 드러내며 쓴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 붓을 들었다. 졸렬한 글이지만 내 욕망에 솔직해 보자는 생각이 앞서 글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먹고 싸는 동안 내가 한 일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정체성에 관한 내 나름 정의다. 나는 월급쟁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출근하기 위해서고 그 짓을 16년간 빠지지 않고 하고 있으므로 나는 뼛속까지 월급쟁이다. 입사 때부터 멋진 퇴사를 꿈꿔 왔으나 결국 현실에 패배해 온 기록의 나이테. 항상 약간의 피곤함이 동지처럼 어깨에 얹혀 있는 회사인간. 내 목줄이 직장에 매여 있는 대신 밥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판의 이리들이 가진 자유를 늘 그리워했다. 급기야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세계최고봉에 닿고 싶었다. 그때 나는 추락사고로 27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발목뼈는 아직 붙지 않았었다. 아토피로 고생하던 젖먹이 아이를 둔 젊은 아빠였고 밥 먹듯 하는 야근에 끽 소리 못하던 볼품없던 신참 과장이었다. 나는 지독하게 평범했지만 사자의 아가리에 머리를 처넣는 고집을 부렸다. 구멍 난 양말같이 숨기고 싶은 월급쟁이 남루한 일상이 미웠다. 시키는 일만 하다 인생 끝나겠다 싶어 단 한 번의 딴 짓을 결심했다. 시시한 일상, 양말 끝을 싹둑 잘랐다. 예상치 못한 밥벌이의 단면이 튀어 나왔다. 꿈이냐 밥이냐를 놓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고민하던 끝에 밥벌이를 걷어차고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더하여 아무것도 아니었던 밥벌이의 비밀이 폭로되는 사태를 보게 됐다. 그것은 거대한 태풍, 그 부동의 중심축에 서서 태풍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라면 맞을까. 꿈쩍 않는 북극성과 나 사이에 선이 쫘악 그어지는 느낌으로 설명될까.


월급쟁이라는 오줌통을 찬 채로 지구별 가장 높은 곳을 오르고 난 뒤, 사람들은 그래, 네 삶에 무엇이 바뀌었냐고 물어온다. 다녀온 직후엔 깡패 10명과 싸워도 이길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노라며 떠들고 다녔다. 그리 믿기도 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사람이 그리 쉽게 바뀌겠는가. 오늘도 이 세계에서 지엽말단의 삶을 살고 있고 부러진 다리는 여전하고 월급쟁이 인생도 그대로다. 단지 시커멓게 그을렸던 얼굴과 진물 나던 입술이 제 모습을 찾았을 뿐이다. 변한 건 없다. 사람들은 나를 의지 충만하며 도전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고백 건데 그런 거 없다. 굳이 들자면 거대한 산을 오르기 전, 홀로 내 자신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맞버티던 붉은 무늬가 내 몸에 흉터로 남아있을 뿐이다. 밥에 굴종하지 않았던 잗다란 경험이 경험이라면 경험이다. 어디 써 먹을 때도 없겠지만 낮에도 꿈꾸는 법을 배운 것은 잘 한 일이라 소심하게 자찬하기도 한다.


글을 쓰기로 한 건 또 다른 모험이다. 명확한 메시지도 없고 중언하고 부언하는 얼치기 글이 될 텐데 어떤 유치함이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나도 모른다. 다만,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 평범, 나약함과 결핍에 대한 자기연민이 대책 없는 모험을 무릅쓰게 한다. 비밀,경험, 법, 같지않은 말들로 제 정신의 알몸을 드러내 보이는 부끄러운 일을 염치없이 저지른다. 


연재는 8회에 걸쳐 실리며 매주 화요일 업데이트 된다.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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