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시선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둘러 보기)
막스 베버는 왜 그랬을까?
(월급쟁이 시선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둘러보기)
현대 월급쟁이 원류는 인간 역사의 어디 즈음에 시작됐을까를 더듬다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를 맞닥뜨렸다. 인간의 역사를 무한 소급 하여 모든 존재를 희미하게 만드는 아스라한 시원 始原이 아니라 역사의 특정 순간에 월급쟁이 단면이 튀어나오는 지점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거칠게 그 지점을 찾던 때 막스 베버가 자장 磁場에 들어왔다. 극동에 사는 월급쟁이의 원류를 서양에서 찾았던 이유는 오늘 월급쟁이가 초창기 자본주의 아래에서 만들어진 전통적 노동자의 현대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초창기 ‘자본주의는 서유럽 봉건제를 무너트리고 만들어졌으니’ 그 정체성으로 따지자면 내 조상은 그러니까 월급쟁이 뿌리는 무리해서 끌어들여 봉건제 농노라 할만하다. 틀린 말은 아닌 게 현대 인류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사회에 살고 있으니 과연 그렇다. 자본주의 시대 월급쟁이의 공통 조상은 조선의 양인이나 노예가 아니라 유럽 중세의 농노들인 것이다. 덧붙이면 봉건제 유럽의 농노와 나와의 거리는 조선 시대의 ‘상놈’과 나와의 거리보다 가깝고 지금 한국 부자와 나와의 거리보다 가깝다.
막스 베버는 19세기 독일 사람(1864~1920)이다. 아버지는 유력 정치인이었고 어머니는 절대적인 개신교도이자 칼뱅주의자였다. 그의 유명한 저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역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대의 시작이라 일컫는 16~17세기로부터 2~300년이 흐른 1904년 출간됐다. 이때는 유럽의 황금시대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은 '벨 에포크'라는 영어로 우리에게 알려진 '라 벨르 에뽀끄(la Belle Epoque, 아름다운 시대)'다. 세계 각지를 피로 물들이며 세운 제국주의 식민 시장이 건재했고, 유럽 내에서는 화염이 사라졌다. 식민 착취로 부를 거머쥔 제국 열강의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세기말의 영광에 올라타 다가오는 신세기를 잔뜩 기대했”(프레시안, 2019.12.14 기사 인용) 던 때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탐욕적 자본가에 금욕 정신을 부여하며 “획득을 위한 무제한한 탐욕은 결코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말하며 이윤추구와 자본축적에 정신승리적 자격을 수여했다. 그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비합리적 충동의 절제 혹은 적어도 그러한 충동의 합리적 완화”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에 의한 이윤추구”로 합리성과 금욕 정신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시대’를 가톨릭 전통주의를 극복한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금욕주의에서 찾아냈다.
책의 앞부분에서 막스 베버는 서양 문화의 합리화 과정에 관해 서술한다. 서양 문화가 전통주의와 결별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자유로운 노동과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라 설명하며 세계를 지배하던 가톨릭 엄숙주의 이상을 조롱한 프로테스탄트들의 출현을 조명한다. 맞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당시 상인계급의 비약적 성장은 기존 질서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필연적이고 시대적인 요청이었다. 상인계급은 자본주의와의 동반성장이 필요했고 막스 베버는 이때를 설명하며 상인계급의 욕망은 곧 이성적인 합리화 과정이라 웅변하며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에게 패배한 사상적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그것이 곧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라 했는데 “인간은 그 본성상 더 많은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자신이 살아온 대로 살고 그에 필요한 만큼만 벌려고” 했지만, ”경쟁이 시작되자 목가적 분위기는 붕괴하고 상당한 재산이 모아져도 이자를 노리는 대부로 사용되지 않고 재차 사업에 투자되었다. 안락하고 쾌적한 옛 생활방식은 박정한 냉혹함에 굴복했다. 그 이유는 합리화 과정에 참여하여 성공한 사람들은 쓰지 않고 벌려고만 했기 때문이며 옛 방식을 고수한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혁을 야기시켰던 것은 예컨대 새로운 화폐의 유입이 아니라 그에 관련된 새로운 정신, 즉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이었다.”고 진단한다.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에 팽배한 금욕주의와 경건주의는 직업의식에서도 이어진다. 월급쟁이 관점에서 예민한 촉수로 더듬어야 할 대목이다. 그는 “종교적 금욕의 힘은 기업가들에게 성실하고 양심적인 노동능력을 가진 동시에 신이 원하는 삶의 목적으로서의 노동에 매진하는 노동자들을 제공해 주었다. 게다가 이 종교적 금욕의 힘은 현세에서의 불평등한 재화의 분배는 전적으로 신의 섭리의 특수한 작용이라는 흡족한 확신을 제공했다.” 일상적 노동이 종교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고 불평등을 뒤로 하고 자신의 직업에 사명감을 투사하게 된다. “도덕적 계율을 명령과 권고로 나누는 가톨릭적 태도를 거부하고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수도승적 금욕주의를 통해 현세적 도덕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현세적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고 “이러한 현세적 의무는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 곧 그의 직업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16세기 칼뱅의 생각과 같다. “요한 칼뱅(j. calvin 1509~1564)의 소명 의식 역시 이 같은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소명 의식이란 모든 인간은 신의 계획을 세상에서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각각 특정한 부름을 받았으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이 무엇이든 설령 아무리 비천한 것일지라도 거기에 충실한 것이 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라는 인식”(김용규의 ‘신’에서 인용). ‘신이 주장한 삶의 자기 목적이 노동’이라 말했던 막스 베버는 16세기 칼뱅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자본가의 이윤 추구와 자본 축적의 태도를 금욕 정신이라 부르며 기업가 생활방식에 튼튼한 윤리적 하부구조를 선사했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골수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금욕이 아니다. 금욕보다 더한 탐욕일 뿐이다. 자본가의 욕망은 ‘자본가 개인과 무관한 자본의 운동’이다. 그는 자본 축적을 향한 인간의 탐욕을 인격과 윤리의 문제로 승격시킨 셈이다. 문제는 시대의 금욕은 애꿎게도 노동자에게 들씌워졌다는 데 있다. 그는 자본주의를 전통주의와 싸워 이긴 결과물로 봤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엄하게도 이것은 승자의 경건성을 노동자에게 주입하는 데 일조한다. 힘든 노동에 신적 사명감을 덧씌우고 불평등을 사상적으로 무마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노동이 자본 축적에 활용되는 길을 활짝 열었다. 어떤 것도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가치 환원성에 대한 자신감, 즉 자본가에게나 있음 직한 물신성을 노동하는 대중에게도 각인시켜 경제적 합리주의자들의 탄생을 촉발했다. 사실 그 ‘합리’라는 것은 노동자 입장에서의 합리가 아닌 기업가 입장의 합리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이 때문에 인간적인 인격이 아니라 돈 많으면 존경하는 풍토가 시작됐는지 모른다.
월급쟁이에게 막스 베버는 중요한 사람이다. 일요일 밤, 다음 날 회사를 가기 위해 친구와의 수다를 스스로 절제하게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팽배한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들을 양산해 낸 사람이니 ‘경건’하게 연구해 봄 직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금욕이 수도원의 방에서 나와 직업생활에 옮겨지고 현세적 윤리가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금욕은 (중략) 근대적 경제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이 우주는 오늘날 이러한 동력기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생활양식을 압도적인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 마지막 화석연료가 다 탈 때까지 아마 규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