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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Jul 23. 2020

닿을 수 없는 곳, 다낭

닿을 수 없는 곳


2016년 겨울이었다. 새벽에 출근하며 살을 애는 추위에 욕지거리가나왔다. 그날은 통근 버스보다 일찍 회사에 가야 했고 그러려면 버스 두 번을 갈아타야 했다. 첫 번째 버스에서 내려 두 번째 버스를 기다렸다. 추워서 윗니와아랫니가 부딪혔다. 기다리던 757번 버스는 오지 않았는데김해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분주하게 오갔다. 큰 캐리어 트렁크를 끌고 무거운 여행가방을 둘러멘 사람이내 앞을 재빨리 지나갔고 그가 지나간 후폭풍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정차해야 할 곳에 공항 버스가 정차했다. 버스 옆면커다랗게 도배돼 있던 ‘다낭’의 푸른 바다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곳은 밝고 눈 부셨다.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는 걸 광고판만으로도 알겠다. 나도 그들을 따라 가고 싶었다. 빌어먹을회사 출근길을 이대로 끊어버리고 가고 싶었다. 갈 수 있을까, 갔으면한다, 그곳이 어느 나라인지, 어디에 붙어 있는 해변인지는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 가리라. 그러나, 그들의 행선지와 내가 가야할 출근길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달랐다. 굳은표정이 더 굳어졌다. 그들은 자기 몸뚱어리만한 캐리어를 버스에 넣기 위해 버스 측면 화물칸 문을 위로들어 올렸다. 그러면 푸른 바다에 ‘다’자가 가려졌고 나는 ‘낭’자를보며 ‘다’자가 다시 보일때까지 그들을 물끄러미 봤다. 그 새벽에 봤던 그들과 다낭이 나는 미웠다. 


다음 번 우연히 마주친 버스에 다낭 광고판이 보일라치면 고개 숙이거나 딴청을 피웠다. 나는 절대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다낭 바다’를 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입고 있는 건 카키색 작업복이었고 그곳으로 떠나는 그들이 입은 건 두툼한 외투 안에 가벼운 반팔이었다. 두꺼운 외투가 위선 같았다. 반팔만으로도 따뜻할 것 같던 그들의외투가 나에겐 위선으로 보였다. 나는 추웠고 허연 입김이 나올 때마다 부끄러워서 내가 미웠다. 그럴수록 나는 낮게 떨어졌고 갈 수 없는 그곳, 야자수가 여인의머리카락처럼 날리는 적도의 바다, 그곳으로 인도하는 광고판이 미웠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이다. 시간이 흘렀고, 다낭이 어디에 있는 해변인지 알게 됐고, 다낭 바다 노스텔지어도없어졌고, 그런 게 있었는지도 모르게 됐을 무렵, 나는 ‘그곳’ 근처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이듬해 늦여름 나는 반 벌거벗은 여인들이 춤추는 곳에 있었다.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나는 다낭에 있다. 그곳이 어디든 추웠던 그해 겨울, 그때 내가 갈 수 없는 모든 곳의이름은 다낭이었다. 내가 발버둥을 쳐도 가 닿을 수 없는 것들의 대명사가 다낭이었다. 지금 나는 다낭에 있지만 내 마음엔 여전히 도달할 수 없는 ‘다낭’은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지금 다낭에 있더라도 나는 다낭에 닿을수 없다. 다낭에 왔지만 다낭에 도착할 수 없다. 아마 나는영원히 다낭에 가지 못할 테다. 북극성을 보고 있지만 닿을 수 없어 떨기만 하는 나침반처럼.


누군가에겐 닿을 수 없는 그곳이 에베레스트고 누군가에겐 다낭이며 또 누군가에겐 행복한 가정이고 더러는 직장에서의승진과 그저 많은 돈일수도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오르고 이루고 그리고 또 내려오고 버린다. 그것이 인생임엔확실하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새벽 출근길을 잊지 않겠다. 고작그곳을 가지 못해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기억과 얇은 작업복에 이를 부딪히며 757번 버스에 오를 수밖에없었던 그날, 남국의 해변, 다낭이 우주의 북극성과도 같았던초라했던 날. 삶은 과정이다. 다만, 과정에서 부끄럽고 싶진 않다. 닿을 수 없는 곳이 무수히 많다고해도 내가 모두 마모되는 날까지 다시 오르고, 이루고, 내려오고,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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