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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용 Oct 06. 2020

‘월급쟁이’ 내려놓고 ‘산’으로

‘월급쟁이’ 내려놓고 ‘산’으로 


발랄하게 써야지 하면서도 결국엔 늘 비장하게 흐르고야 말았다. 내가 심각하건 말건, 비장하건 시장하건 하늘은 파랗고 아이들은 웃고 떠들고 개들은 흘레붙는다. 선물 같은 오늘을 두고 혼자 죽상을 하고 있는 꼴이라니. 내 삶에 관한 불만이 글 속에 오롯이 배어있다는 걸 알게 됐다. 글을 바로잡기보다 나 먼저 바로잡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일어 내 모가지를 비틀고 나를 내어놓아라 호통 치니 어디서 감히 나를 바로잡느냐, 나는 잘못한 적 없다며 반항하기로 추석을 맞아 절필 14일 형에 처하고 하루 한 번씩 14일간 총 7시간 명상 활동을 명령했다. 글이고 지랄이고 집어 치고 네 본래면목이나 찾으라는 준엄한 스스로의 언어 격리였다. 추가하여 최대한 시부리지 말 것을 권고했던 것이다. 


뭐 그렇다고 뾰족하게 나아진 건 없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나아졌다면 애초에 젠체하지도 않았겠지. 지난 글들을 곱씹어 보니 부끄러움만 가득할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를 찾아 나서기 위한 첫발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는 늘 부끄럽지만, 글은 부끄러운 나로 그냥 있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다. 


가진 게 없을수록 조금만 가지게 되면 집착하는 법이다. 가진 게 하나 없다는 월급쟁이 처지에 대한 자각은 월급과 월급으로 얻어지는 어쭙잖은 힘에 탐착하게 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힘이 나는 궁금했다. 책을 뒤져 월급쟁이 역사를 찾아 나섰고 주의주장들을 들을 때마다 월급쟁이와 연결시켰다. 월급쟁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그 시답잖은 일들과 나 사이의 관계를 예의 주시했다. 노예 같은 내 삶의 기원이 궁금했고 궁구하며 내려간 끝에 만난 역사적인 막장의 인생이 어느 글에나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었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멸시, 자학과 자괴가 비장함 뒤에 숨어 스스로 조롱했던 것이다. 


그 죗값으로 받은 형량치곤 절필 14일은 가벼울 수 있는데 천성이 쪼잔하여 심신미약 상태에서 글을 썼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느닷없이 해외로 달라뺀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글이라는 것도 양해 바란다. 여전히 글에 관해선 초짜인 점을 고려하면 저 정도로 어찌 안 되겠는가 싶은 것이다. 더하여 그간 마음편지를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점을 반영했다. 또 명상 활동의 조건은 이랬다. 월급쟁이 주제는 이제는 접자, 네 정체성이고 뭐고 다 좋은데 글이 너무 나댄다, 오바를 넘어 육바에 이르고도 모자라 아예 징징대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무겁고 메시지도 명확하지 않다, 중언부언은 글마다 떡, 들어앉아 있으니 읽기가 어렵다, 그러니 명상하면서 제발 글 좀 바꿔보라는 요청이었다. 


오랜 세월 살았던 한국을 떠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하늘은 파랬고 구름은 세제로 빤 듯 하얬다. 늦여름과 초가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날씨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 날씨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그때 비로소 내 살던 이 나라를 떠난다는 생각이 정통으로 가슴을 관통했다. 공항에서, 지금이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를 1초 동안 생각했었다. 지난날의 아쉬움, 앞으로의 두려움과 흥분이 내 속에서 뒤엉키던 그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간밤, 짐을 싸며 무게와 공항 검색대를 생각했고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만 간추렸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실로 많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짐을 비워내고 또 비워냈고 다시 비워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후루룩 페이지를 넘기며 아쉬움에 내려놓지 못했던 서재의 책들까지 그렇게 모두 남겨놓고 왔다. 고 믿었는데 노상 방뇨의 초미니 황하도 생각하지 않으면 오줌빨에 그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황하로 거듭나고 급기야 4D의 지척을 울리는 굉음까지 들리게 되는 것처럼 남겨놓고 왔다고 믿었지만 차마 두고 올 수 없었던 그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건 산山 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산에 관해 쓰려 한다. 생각하면 감전된 듯 온 몸이 들뜨고야 마는 나의 산, 찌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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