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해 인천 국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얼마 전에 인터넷에 소개된 글이다. '하늘 위의 호텔'로 불리는 A380 기종을 타고 인천을 출발해 강릉과 부산, 대한해협을 건너 제주 상공을 돌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엄연한 국제선이다.
코로나 시대에 맞춰 항공사가 기획한 '무착륙 관광비행' 상품인데 탑승률은 100%라고 하며, 특히 50만 원대인 일등석을 비롯한 프레스티지석은 언제 타보겠냐며 모두 완판 돼 코로나 시대 '보복 소비'를 뒷받침했다고 한다.
비행의 꽃인 기내식은 방역지침에 따라 제공되지 않고, 개인이 소지한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금지됐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면세품도 살 수 있어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승객들을 위한 아이디어 상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너무 시간이 짧고 값비싼 무착륙 관광비행 상품 대신에, 나는 최근 1박 2일 호텔 이용권을 사서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며 멋진 하루를 보냈다.
이는 지난달 인터넷에서 한시적으로 광고한 이벤트 상품이었는데, 강남에 있는 유명 호텔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받으며 마치 해외여행을 한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았다.
여권을 소지하고, 길고 복잡한 출입국심사를 거쳐, 겨우 2시간 30분간의 하늘 여행을 하는 상품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4성급 호텔에서 정중한 대접을 받으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여름휴가 때 교통체증과 바가지요금을 피해 가까운 호텔에서 시원하게 바캉스를 즐긴다는 '호캉스'는 지금까지 남의 얘기로 들렸다.
그것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로 호텔업계도 항공(여행) 사처럼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이 상품은 가성비가 좋아, 우리 같은 서민이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 매력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체크인을 한 후에, 오랜만에 강남역 일대를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저녁 식사는 우리의 과거를 보여주는, 추억 어린 식당에서 해결했다.
강남역 주변은 젊은이의 거리답게 다양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고, 특히 대나무 울타리로 특색 있게 꾸민 카페는 들어가고 싶었지만 빈자리가 안 보여 눈요기만 하였다.
밤늦게까지 화려한 불빛과 젊음의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던 강남이지만, 인적이 드문 동네에 위치한 호텔에서 바라본 야경은 적막한 도시 그 자체였다.
나는 어둠을 뒤로한 채 갓을 쓴 붉은 간접조명을 받으며, 침대 위에서 하얗고 푹신한 베개 2개를 겹쳐 등에 기대고 앉아, CNN 뉴스와 NHK를 보면서 미국과 일본을 여행했다.
다음 날 아침 평상 시보다도 1시간 30분이나 늦게 일어나며 게으름을 피웠고, 2층 레스토랑에서 푸짐하게 뷔페 식사를 한 후에, 모닝커피까지 챙겨 마시며 창문 너머로 아침부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그네처럼 느긋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사우나장에 들려 냉온탕을 오가며 몸을 씻은 후에, 다시 룸에 올라와 차를 마시며 키 큰 나무에 둘러싸인 이국적인 고급주택단지를 한가로이 바라보았다.
우리 부부는 하늘 여행은 하지 않았지만, 첫날 프런트 데스크에서 한국말이 유창한, 미모의 프랑스 여자 사무원과 체크인을 하였고, 다음날에는 레스토랑과 사우나장에서 많은 외국인과 마주쳤다.
또한 룸에서 아내와 그동안 함께 여행하며 즐거웠던 얘기를 꺼냈고, 특히 블라디보스토크를 여행할 때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아담한 카페 우흐뜨블린에서 러시아 미녀들 옆에 앉아 단돈 7천 원으로 연유 바나나 팬케이크, 코코아 닙스 케이크, 그리고 아모르 주스를 먹던 얘기를 하며 웃었다.
아무튼 우리는 호텔에서 그리고 주변 동네를 산보하면서도 해외 어딘가 자유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불어넣었다.
아내는 비록 짧았지만 이번 호텔 여행은 짜임새가 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하루를 재미있게 보냈다며 엄지 척을 하였다.
내 주변에는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2년 전에 가족과 충북 단양에 놀러 갔을 때 용기를 내어 패러글라이딩을 한 후에 "아! 그래! 나도 한번 그것을 만들어 봐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계획이 불확실하여 지금은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것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래서 언제 기회가 또 있겠냐고 하여 이번 '호텔 여행'과 지난겨울 '철원 백마고지 가족여행' 등을 실현하였다.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은 우리네 인생이지만,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리듬을 깨니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재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은 어떤 이벤트를 할까!
한라산과 설악산은 한번 가봤으니, 다리가 튼튼할 때 지리산을 정복할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