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학 개론
벌써 5월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관계가 느슨해졌고, 그렇다고 특별히 바쁜 일도 없는데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 원망스럽다.
예전에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가끔 수첩을 뒤적이거나, 카페 및 밴드에 쓴 글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5년,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20~30대 젊은이는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늘 청춘이라고 외쳤는데 지금은 무감각해졌고, 주변을 살펴보니 건강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뿐이다.
정확히 10년 전 이맘때 내가 동기회 카페에 올린 '건축학개론'을 읽으니 로맨틱한 기분이 뭉실뭉실 되살아나, 지나간 청춘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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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7시 젊음의 거리인 강남역에서 대학 동기들의 번개 모임이 있었다.
동기들은 헤드헌터인 나를 포함하여 모교 여교수인 A (후에 디자인대학장 역임)와 B교수(후에 H대 공과대학장, 부총장 역임) 그리고 중소기업 사장인 C, 중소기업 부사장인 D,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는 E, 그리고 호주법인 한국 대표인 F까지 7명 이었다.
이번 모임은 모교 공과대학 부학장으로 영전한 B를 축하하는 자리였고, 작년 송년회 이후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비록 평소의 1/3도 안 되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그중 대다수는 수년 전에 구성된 중창단(자녀 결혼식에 축하노래) 멤버들이었고, 술에 약한 내가 술 실력을 자랑할 정도인 그런 범생이들의 모임이었다.
둘 다 삼성그룹 출신이 아니랄까 봐, 그 자식들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들어간 C, 그리고 삼성 SDS에 들어간 F를 축하하며, 우리는 학교 얘기, 친구 얘기를 하며 소주잔을 주고받으니 대부분 얼굴이 홍당무로 변해갔다.
그때 이번 모임을 주선한 F가 느닷없이 일어나더니, 요즈음 절찬리에 상영되는 영화 '건축학개론'을 본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가 없자, 이참에 가까운 곳에 극장이 있는데 단체 관람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이에 E는 그 영화가 재미있다고 소문나서 보고 싶은데 마침 잘 되었다고 하였고, 나를 포함한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반색하였다.
다만, 자타공인 트로트 가수, 스키선수 그리고 골프 싱글인 만능 스포츠맨 D가 회식 후에 2차로 노래방을 생각하고 있어 우리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D도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하고, F의 제안에 동의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 먹다가 말고 졸지에 영화구경이라니,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본다며 우리는 F의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며 모두 나머지 술잔을 비웠다.
만일 술꾼인 다른 친구들이 합석했다면 이런 급조한 아이디어가 실현되었을까!
중년이 되어도, 예쁜 아줌마 교수인 A는 매달 열리는 다른 모임에 학교일, 교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불참했는데, 이번에도 못가 무슨 변명을 둘러대야 할지 걱정이라고 하였다.
주빈인 F는 시끄럽게 떠드는 아저씨들을 보고 어렸을 때 욕 많이 했는데, 우리도 결국 그 꼴이 돼가고 있다며 웃었다.
영화 티켓을 구입한 F는 여교수 A 옆에 누가 앉는지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여, 우리는 공평하게 제비뽑기를 하자고 소리쳤다.
이 멜로 영화는 무선호출기 삐삐, 소니 CD Player가 등장했던 15여 년 전, 어느 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우리들은 영화관 최고령 관객이지만 청춘남녀처럼 커다란 통에 담긴 팝콘을 나눠먹으니, 그 시간만큼은 30년도 훨씬 지난 학창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모인 우리들은 감동된 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웃었고, 그중 00은 그 시절이 떠올라 충격에 사로잡힌 듯 오묘한 표정을 지어 우리는 무슨 뜻인지 사실대로 얘기하라며 추궁하였다.
우리 모두 그런 아름다운 첫사랑의 추억을 갖고 있어 잠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며 미소 지었다.
밤 11시 30분경 헤어질 때, 번개 영화 관람을 주선한 F는 “나는 너희들이 부럽다! F를 친구로 두어서”라고 얘기해 배꼽을 잡았고, 밤의 황제인 D는 헤어지기 아쉬운 듯 친구들에게 “우리 3차로 노래방에 가자!”라고 얘기해 박장대소하였다.
"그래! 맞아! 젊음이 최고다! 지금도 우리는 청춘이야!"
나의 청춘학개론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