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엄마, 부인, 며느리로 사다는 건
날씨가 너무 좋은 오늘 봉가네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직까지 감기로 인해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서 모아놓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어제저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설거지 거리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아는 지인분은 백내장 수술을 하고 나서 공주 대접을 받고 지내신다고 하는데 나는 아파도 내 일을 스스로 해야 하고 삼시세끼 챙겨야 하는 주말이 급 서러움으로 다가온다.
"응급실이라도 다녀와 어떻게 버티려고 그러냐"
어제 남편은 본인 딴에는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 나는 서운함이 생긴다. 감기로 인해 내리 잠만 자는 부인 데리고 병원 갈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응급실 다녀오라는 말이 왜 그리 무심하게 들려오는 건지... 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든다.
엄마 나 배고픈데.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시작된 나의 잠은 일요일 아침 7시까지 이어졌다. 숙면한 탓인지 어지러움증은 사라졌다. 아직 콧물로 인해 목은 아프지만 어제보다는 나은 몸상태가 되었다. 물 한잔을 마시고 세탁기를 돌렸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허기져 있는 나의 배를 두유 하나로 채웠다. 오늘은 뭘 하나 잠시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는데 거실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나 배고픈데"
"오늘 아침은 네가 알아서 챙겨 먹음 안될까?"
"......"
말이 없는 걸 보니 요 녀석 안 먹으려고 하는 듯싶다. 중3이면 본인이 알아서 챙겨 먹을 때도 되었는데 컵라면이 아닌 이상 스스로 챙겨 먹지 않는다. 말없는 아이 모습에 나는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햄과 달걀을 이용하여 볶음밥을 만들었다. 자식이라서 나는 엄마라서 하는 거다.
"00아 밥 먹어"
말없이 주방으로 나온 아들 식탁 앞에 앉아서 볶음밥을 먹는다.
'으이그 무심한 녀석'
애들한테 옮길라 어서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지어먹어라
사라진 어지럼증이 복귀를 한 듯싶다. 조금 움직였는데 머리가 띵하다.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대고 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액정 화면에는 시어머니라는 글자가 떠 있다.
'무슨 일이시지? 뭐 필요한 게 있으시나? 아 ㅠ 나 오늘 움직이기 싫은데...'울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목소리가 아예 갔구먼 울 애들한테 감기 옮겨갈지 모른께 어서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어라"
'하아'
솔직히 나의 시어머니께서 는 나에게 잘해주신다. 밑반찬과 간식거리도 잘 챙겨주시며 며느리가 자주 찾아뵙지 못하더라고 몸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걱정을 해주시는 분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늘 애들한테 옮길지 모르니 병원 가라는 말 이 말이 걸린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이들에게 감기 옮긴다는 말씀이 내 가슴에 상처가 되어버린다는 걸 왜 어머님은 모르실까?
Three 봉, One 박
일요일 아침 남편, 큰딸, 아들 이 three 봉 조합은 오늘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날이 좋아도 너무 좋은 일요일 one봉은 낚시를 가고, two봉은 새벽까지 남자 친구랑 통화하더니 해가 중천인데도 방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three봉 아들도 밤새 친구랑 게임을 하더니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다. 식탁 위에 놓인 세 개의 콜라캔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쉰다.
몇 주 전 남편과 신경전을 벌인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 나를 막아세웠고 같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당신이 그러니까 아이들이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거 아니냐 같은 말인데 왜 내 말을 막아 세우는 거야? "
이후 며칠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이 눈치 보는 듯싶어 내가 먼저 말을 걸었고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을 하였다. 그게 내 속은 답답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