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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연 Jul 10. 2023

헌신하지 않을 것

나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에

필자는 요즘 간헐적 단식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보고 있다. 간헐적 단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의사분들이 잘하실 것이니 넘어가고, 역사적인 설명을 하자면 '인류는 하루 세끼를 모두 챙겨 먹을 수 있게 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통념일 뿐이다. 원시시대에 어떻게 요즘처럼 세 끼니를 온전히 먹을 수 있었겠는가? 인간이 굳이 식사를 세 번 하여 영양 과잉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이다. 이와 같은 설명을 듣고, 나는 '기존에 내가 배웠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시 오늘의 주제인 헌신으로 돌아와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헌신 : (명사)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사전을 찾아보니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헌신이라고 한다. 나는 빈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삶을 살아가며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문을 품지 않는다. 내가 의문을 품은 부분은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 점이다.  


바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나의 것을 준다는 것이다. 주는 것은 재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시간, 관심, 애정, 노력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헌신을 받는 객체는 누가 될 것일까? 자식, 연인, 일, 학문, 기예, 국가, 공동체 등이 될 수 있겠다. 나와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멀리는 국가나 공동체를 위한 헌신까지도 있기에 우리는 헌신이 숭고한 것이고 장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나의 모든 것을 다른 객체에게 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헌신하면서, 정작 자신이 망가지고 불행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국종 교수님은 한쪽 눈을 잃으셨고, 군인 경찰 소방관들은 수도 없이 죽고 다쳤지만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고, 사명감을 가진 의사들은 도산하거나 격무에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이나 연인에게 헌신하는 경우에도 정작 본인은 불행한 경우가 많다.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의식적으로 더 본인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고귀하다. 하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본인의 가치를 희생당하게 된다. 세상이 당신을 아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헌신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빠르게 스러져간다. 반대로 헌신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타인을 먹잇감 삼아 살아가는 악당들은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나는 헌신할 수 있는 옳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더 세상에 많아지고, 번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에 좀 더 남아있기를 바란다.


물론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며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과 사랑에 있어서 '내가 나를 이렇게 희생하면서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씩은 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어떤 다른 것도  자신의 행복과 안위보다 중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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