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도 고달픈 그날의 기억
드디어 간다. 미국으로.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밤새 눈물 흘렸던 나는 이제 안녕이다.
우리 가족은 1년여 만에 다시 완전체가 되는 것이다.
승용차에 28인치 트렁크 3개와 내 몸을 꽉꽉 구겨 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역시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하늘이 너무 좋다.
그래. 이제는 좀, 나도 살아보는 거다.
혼자 하는 육아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까짓 거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암튼 난 뜬다. 완전체가 되어서.
미국까지 가는 길은 험하다.
41개월 딸과 좌석 없는 15개월 아들을 데리고 16시간 비행에 경유까지 해야 한다.
혼자서도 힘든 여정을 두 꼬맹이들과 하려니 앞이 캄캄하지만 뭐 어떤가. 아무리 캄캄해 봤자 내 지난 1년보다 캄캄할까?
시부모님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입국장의 출입문이 꼭 내 인생의 새로운 서막 같았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약 4년 만의 면세점은 돌아볼 틈도 없이 게이트로 가서 짐을 챙겼다.
아이들의 물건만 한가득이다.
둘째 유모차와 기저귀, 시판 이유식과 우유와 여벌 옷, 첫째의 지루함을 조금은 잠재워 줄 갤럭시탭과 색칠공부책, 종이접기 책 그리고 간식들...
혼자 여행할 때의 그 딸랑한 손가방이 언제 적 이야긴가 싶다.
델타에 탑승했다.
국적기가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다는 수많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살 곳은 직항도 없는 작은 도시라 델타가 최선이다. 막상 탑승하니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승무원이 많았고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쫓겨났다더니 하던 기사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좌석이 없는 둘째의 자리는 내 무릎이었다.
워낙 엄마를 좋아하는 아이라 노력하지 않아도 코알라처럼 안겨 있어서 정신적으로는 매우 안락했지만 신체적으로는 고달팠다. 안 그래도 허리가 아픈데 둘째가 좀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 몸을 꼬깃꼬깃 구기다가 무리가 왔다.
나도 비즈니스 타고 싶다. 나도 비행기에서 누워 보고 싶다!!
비행기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유튜브도 볼 수 있다고 첫째에게 잔뜩 흥미를 부어왔는데 막상 해보니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었는지 자꾸만 언제 도착하는지 묻고, 의외로 잠도 잘 자지 않아서 곤란했다.
경유지에 낮 12시경 도착 예정이라 충분히 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내 마음은 아이들에게 있어서만은 참 쉽게도 짠해진다.
경유지인 디트로이트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쳤다.
둘째는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 때라 상황 파악을 못했지만 첫째는 미국에 도착한 것을 눈과 귀로 깨달았을 것이다. 그 큰 눈을 굴리며 두리번거리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이들에게 그야말로 프렌들리한 사람들을 보며 내 미국 생활의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탑승 전에는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세 가족이 나눠 먹었다.
남편과 내 배가 작기도 하지만 왠지 10달러가 넘는 샌드위치를 사자니 손이 떨린 이유도 있었다.
야무지게 먹어치우고 국내선에 탑승했고 1시간 남짓의 비행시간 동안 꿀잠을 잤다.
요동치는 비행기에 눈을 떠 밖을 보니 광활한 벌판이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데 해는 또 얼마나 쨍한지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눈을 뜨지 못했다.
이 정도의 풍경이면 한국에선 시골이다.
여기에 공항이 있다니!
비록 그 공항이 버스터미널의 사이즈였지만 어쨌든 공항이니까.
장난감 같은 사이즈의 수하물 벨트에서 짐을 찾고,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이웃이신 강 박사님을 만났다. 미리 준비하신 그란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시길래 굉장히 다정하고 섬세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다.
미리 계약한 아파트 관리실에서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현관 열쇠를 받아 집으로 왔다.
열쇠라...
참으로 빈티지하다. 열쇠뿐만 아니라 모든 게 빈티지하다.
스위치도 수도 밸브도 심지어 조명도 빈티지하다. 집 안팎의 모습들이 한국의 80-90년대 같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가구도 살림살이도 하나 없는 미국의 낡은 아파트에서 고꾸라졌다.
드디어 다 왔다…!
이상하게도, 이제부터인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미국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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