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연락에 고민을 시작합니다. 인천의 어디를 소개해드릴까요. 이곳에서 생의 절반을 살았거든요. 그렇다면 이방의 당신에게 뭐라도 제대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더라고요. 상하이버거를 먹으려고 햄버거가게에 들어가다가 문에 비친 새를 보았어요. 까치일까 까마귀일까 돌아보니 세상에나, 갈매기였어요. 지도를 검색해보니 인천 시청에서 소래포구까지 차로 19분, 8.5킬로미터였어요. 내가 사는 아파트 15층 창밖으로 거대한 두루미를 보기도 합니다. 서해가 지척이라는 삼삼한 증거일 것 같은데 바다의 실감은 멀기만 합니다.
영화 《파이란》을 보았어요. 당신,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다면서요. 나의 소감은 ‘사랑에 관한 리얼 판타지’라고 답하겠어요. 한 번도 제대로 만나지 않은 채로도 질병처럼 앓게 되는 게 사랑이라면 ‘리얼’이고요. 그 순간을 끝까지 믿고 놓지 않는 게 사랑이라면 ‘판타지’라고요. 강재 씨와 파이란이 남은 생을 함께 했다면 행복했을까요? 사랑하여 믿고 의지하며 선하고 다정한 곁이 되었을까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서로의 진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역만리 두 사람이 간신히 만나 하릴없이 헤어지게 되는 게 운명일까요. 그 영화를 두 번 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신에게 해드릴 이야기에는 영화 《파이란》과 김영하의 『검은 꽃』이 함께 갑니다.
파이란처럼 시작할게요. 인천항에 내린 그녀가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 차이나타운 패루 앞에서요. 나도 인천으로 이사 와서 맨 처음 놀러온 곳이 차이나타운이었어요. 다들 이곳을 말하더라고요. 패루(牌樓)는 기념비적인 문형의 건축으로 패방(牌坊)이라고도 합니다. 충신이나 효자, 절부 등의 현장 시설로 시작된 것이라고 해요. 이곳의 패루는 4개입니다. 역 앞에 있는 첫 번째 패루는 중화가(中華街)입니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중국인들의 거리라는 뜻이지요. 붉은 색과 황금색입니다. 두 번째는 인화문(仁華門)입니다. 어질고 밝은 빛이 퍼지라는 뜻으로 금색의 화려한 용문양이지요. 세 번째는 선린문(善鄰門)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으로 문 양쪽에는 벽화거리가 있고 12지신 석상이 그 앞을 지킵니다. 네 번째는 한중문(韓中門)으로 패루 중 가장 커요. 주변에는 중국의 재물신인 관우상과 도교 팔선 등이 있습니다.
중화가 패루를 지나 온통 붉은 청관거리를 지나서 만나는 돌계단이 청일조계지입니다. 조계(租界)란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던 지역을 말해요. 1883년 개항이 되자 제물포에는 강대국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땅을 빌려주는 형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내 땅을 눈뜬 채 빼앗긴 거죠. 가장 먼저 생긴 조계는 1883년 9월 30일에 설정된 일본 조계이고, 다음해 4월에 청국 조계, 10월에는 각국 조계가 생깁니다.
일본인들은 상인조합까지 만들어서 쌀을 수출하고 하역, 선박 납품, 생필품 제조업 등을 통해 빠른 속도로 번창합니다. 청국의 조계는 중국인 거상들이 왕래하면서 번성했는데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후에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각국 조계는 지금의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무려 14만 평의 크기로 조성되었어요. 개항과 함께 조성된 각국 조계로 인천의 시가지는 변모되었고 중국인마을, 일본인마을, 서양인마을, 한국인마을 등으로 나뉘어 이국적인 풍경을 선보였습니다. 수탈의 측면으로 보면 견디기 힘든 치욕과 한탄이면서도, 좀처럼 한 데서 조우하기 힘들었을 다국 문화의 흥청망청한 조합이었겠지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불안과 기대, 아니 기대보다는 불안이 압도적이었을 테고 나라가 사라지면서 막연한 불안은 현실적인 공포가 되었겠지요.
조계지 경계 계단 위에 흰 동상이 보여요. 차이나타운이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칭따오에서 선물한 공자상입니다. 동상을 뒤로 두고 섰을 때 오른쪽은 중국거리, 왼쪽은 일본거리입니다. 계단의 석등부터 생김새가 달라요. 중국풍 석등은 사각이고 일본풍 석등은 육각입니다. 중국조계지는 온통 붉은색이고, 일본거리는 목재 건물로 갈색입니다. 영화에서 파이란이 이모를 만나려고 찾아갔던 중국집이 지금도 있어요. 사진에서 보이는 <풍미(豐美)>가 그곳입니다.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외치는 호객꾼이 있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
상가의 집집마다 저마다 가장 오래된 집이라고 하더라고요. 곧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건물에는 ‘복(福)’ 혹은 ‘임대문의’라는 종이가 붙어 있어요. 먼지 고인 낡은 문틀에 기대어 한숨을 쉬는 노인의 얼굴이 보일 것만 같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목도한 탓에 어스름해진 눈은 어느 먼 시간을 더듬고 있을까요. 마르고 구부러진 노인의 다리를 감고 선 어린아이 얼굴도 보이는 것 같아요. 터전을 잃은 자들의 뿌리 없는 그림자들이 느릿느릿 스쳐갑니다. 악전고투의 상처 같아요. 불운한 흉터 같아요. 이런 자리들을 다 어쩌면 좋아요. 어디까지 보존하고 어디에서부터 개발해야 좋을까요. 아련하고 아름답고 안쓰러워서 아무것도 사라지지 말라고 붙들어두고 싶지만, 그런 감상은 살아있는 자들의 자리를 잠식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