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관거리 저 붉은 집 이층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 여인을 상상합니다. 저쪽과 이쪽의 누군가가 사랑에 빠지기도 했겠지요. 각국 조계지들 사이의 숱한 소란 중에도 뜨거운 연애는 유난스러웠겠지요. 사랑은 기꺼이 아니 기어이 표가 나는 일이니까요. 환난 중의 사랑이라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만리타향 이국의 외로운 자들이라 사랑에 더욱 급했을까요. 먹고 사는 일이 중하여 사랑 따위 헛짓이라고 했을까요. 미칠 듯 했을까요. 장난스러웠을까요. 귀를 쫑긋 세운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겠지요.
양산을 쓰고 가는 멋쟁이 여인들을 상상합니다. 풍성한 머리를 말아 올리고 희게 분칠을 하고 붉은 연지를 바르고 양장을 차려입은 여인들도요. 반짝이는 구두 소리가 탭댄스처럼 경쾌합니다. 그들을 몰래 힐긋거리는 이들도 있었겠지요. 망해가는 나라에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하여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거칠고 검은 낯에 허름한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망연히 부러워하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영원일까 절망하는 이들도, 그렇게 영원이기를 소망하는 이들도 있었겠지요. 어제와 같은 오늘이라면 영원일까요. 오늘과 같은 내일이라면 영원일까요. 모든 순간이 영원에 수렴될 테니 순간마다 영원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이 그래서 더욱 소중히 여겨지는데요.
청나라 사람들은 개항하기 전부터 소금무역을 하며 인천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개항을 하고 조계지가 폐지되기까지 이 거리의 중국음식점들은 전성기를 구가하는데요. 모두들 돌아간다고 해도 남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들 중 중국인들의 근기가 강했을까요. 궁리하고 조력하여 스스로 세를 불린 것일까요. 지금도 곳곳에 차이나타운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부산 동구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지요. 강원도에도 조성할 거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영국 런던, 파리 13구, 캐나다 벤쿠버, 네덜란드 로테르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호주 퍼스 등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가 없는 것 같아요. 지독히 넓은 본국에서 지독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독히도 부대끼며 살다 지쳐 떠나서 간신간신 내린 새 뿌리였을까요. 끄트머리로 내몰린 자들의 디아스포라일까요.
오래전 브루클린에 잠시 지낼 때의 집주인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딸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그곳이 너무 좋다고 했어요. 왕 계란과 싱싱한 양상추와 마요네즈와 폭신한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드신다고요. 일요일이면 집 앞으로 교회 버스가 온다고요. 곱게 차려입으시고 교회에 가서 예배도 보고, 갖은 찬으로 준비된 한식 점심을 드시고, 일주일 동안의 영어 우편물을 갖고 가면 알아서 척척 처리해준다고요. 젊은 시절 고생이 많았지만, 뭐 하나 부족한 게 없고 필요한 게 없고 걱정근심도 없으니 유에스에이 만세라고요. 그날의 진갈색 자카드 소파 위로 묵직한 공기 위로 먼지들이 반짝반짝 떠다녔어요. 현관 입구 유리 상자에는 한복을 입은 신랑신부 인형이 있었어요. 적적하고 고요하고 외로워서 진공된 천국 같았어요.
오늘 점심으로는 짜장면이 좋겠어요. 차이나타운, 하면 짜장면이지요. 중국 산동지역 출신 우희광 씨가 22살에 <산동회관>으로 첫 영업을 했는데, 당시 인근 인천항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중국요리의 맛에 이끌려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더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음식이 짜장면이고요. 중국된장인 톈몐장(甜麵醬)을 비벼먹는 작장면(怍醬麵)과 달리 달콤한 캐러멜을 첨가하고 물기를 유지해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습니다. 톈몐장은 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시켜서 만든, 단맛이 강한 중국 된장을 말합니다. 지금 영업 중인 공화춘은 새로운 공화춘이고요. 역사 속의 공화춘 건물은 인천시 중구에서 매입하여 사진과 같은 짜장면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당시 <산동회관>은 단순한 중국요리점이 아니었어요. 인천항을 오가는 각국 무역상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중국 객잔(客棧) 같은 공간이었지요. 1911년에 청나라가 중화민국이 되었는데요. 산동회관 측에서는 중국이 아시아 최초 공화국이 되었으니 매우 기쁜 일이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이다, 청춘의 활기와 희망을 담자 등의 의도로 <공화춘>이라고 개칭했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중국 요릿집으로 호황을 누렸는데, 화교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 정부정책에 밀려 1983년에 폐업하게 됩니다. 2층 구조에 69평 규모인 <공화춘> 본 건물은 중국 산동지방의 장인이 참여하여 지은 중정형의 중국식 건축물이고요. 외벽은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차이나타운에는 삼국지와 초한지, 두 가지 벽화거리가 있습니다. 삼국지 벽화거리는 청일조계지 계단의 공자상 근처에 77개의 벽화와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도원결의도 있고 여포와 삼형제의 대결도 있고 조조의 십만대군을 막아낸 장비도 있고 죽음을 예감하는 제갈공명도 있습니다. 초한지 벽화거리는 세 번째 패루인 선린문 방향입니다. 56개의 벽화와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대적으로는 초한지가 삼국지보다 앞섭니다. 초한지는 한나라의 건국기이고 삼국지는 한나라의 멸망기이니까요. 초한지는 5년 동안 중원을 놓고 벌이는 한우와 유방의 대결이고, 삼국지는 100년에 가까운 기간을 다룬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실감하게 됩니다. 즐거이 읽고 전하며 기억하는 일이라니, 우리의 역사도 아닌 것이 이렇게 흥미진진하다니. 시대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의 즐거움과 엄중함을 느낍니다.
이제 자유공원입니다. 자유공원은 파고다공원보다 5~6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입니다. 개항 후 영국, 미국, 독일, 일본, 청 등이 인천 해안지대를 차지하고 그들의 휴식처로 만들어놓은 공원인데요. 서공원, 만국공원 등으로 부르다 1957년 맥아더 동상이 세워지면서 자유공원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월미도와 연안부두가 한눈에 보여요. 영화 《파이란》에 몇 번이고 등장한 그 바다입니다. 코로나 여파로 한산합니다. 공원의 중앙에 마스크를 하고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리모컨으로 모형 트레일러를 조종해요. 섬세하게 만들어진 은빛 트레일러는 진짜처럼 속도감 있게 달려갑니다. 역시나 마스크를 한 아이들 몇이 그걸 구경하고, 멀리 마스크를 한 노인들이 트레일러와 아이들을 구경하고 나 역시 마스크를 한 채 트레일러와 아이들과 노인들을 구경해요. 마스크 하나로 대동단결입니다. 맥아더장군을 배경으로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 양반은 식곤에 겨운지 졸고 있고, 나는 장군의 전신을 꽃가지 틈으로 간신히 잡습니다. 아슬아슬 흔들리는 양귀비와 원 없이 커다란 장미들도 담아요. 부풀어 오른 노란 옷소매처럼 꽃가루를 잔뜩 단 꿀벌들이 무겁게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