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허(凌虛) 송도의 여름(2)

by 김박은경

4. 구송도역과 신송도역

소나기 예보가 있던 오후, 폐역이 된 송도역을 찾아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네비게이션에서는 이곳이라는데 안내문도 역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높은 곳을 찾다가 근처 유치원 옥상으로 올라가보았다. 가림막 너머에 역사로 추정되는 긴 건물과 사진으로 보았던 급수탑이 있었다. 늙은 나무도 있었고 철로가 달렸을 텅 빈 길이 길게 누워있었다. 아아, 함성을 지르는데 굵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뭄 중의 단비라니, 어두컴컴해지는 하늘도 비릿한 물 냄새도 한없이 반가웠다.


송도유원지에 가기 쉽도록 기차역이 세워졌고, 역에서 유원지까지 송도관광도로가 개설되었다. 이 기찻길로 수인선 협궤열차가 달렸고 역의 이름은 송도역이 되었다. 협궤열차는 운행을 멈췄지만 그 흔적은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원인재역 부근에는 철로와 다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도로 쪽 언덕 위에 작은 알림판이 설치되어 그곳이 그곳임을 알 수 있다. 시립박물관 마당에는 열차가 우뚝 서있는데 ‘남동-송도-용현’이라고 정거장이 적혀 있다. 윤후명 소설을 읽으며 달리는 협궤열차를 상상하다 보면 꼬마기차 한 대가 가슴 저편에서 달려왔다 달려가고.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 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수원과 인천(송도)를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도 한다.

“그거 트럭하고 부딪쳐도 넘어지겠군.”

누군가 말한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는 조그만 열차.

-윤후명, 『협궤열차』, 책만드는집


17.jpg 시립박물관 마당의 협궤열차
18.jpg 원인재역의 협궤열차 철로
19.jpg 구송도역, 출처-연합뉴스
20.jpg 폐역이 된 구송도역
21.jpg 폐역이 된 구송도역 급수탑
22.jpg 새로 지은 송도역

구송도역은 1995년 폐선 된 후 방치되고 있었다. 자료 조사 중에 보니 폐 건축물이 쌓여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사진도 있었고, 하루아침에 말끔히 치워진 사진도 있었다. 방치된 엣 수인선 송도역을 복원한다는 기사가 떴다. 정확히 말하면 복원 기사가 났고 한참 후에는 예산 부족으로 연기되었다는 기사까지. 과거 항공사진과 문헌 등을 중심으로 송도역 인근에 직경 15미터짜리 철제 전차대와 선로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전차대는 철도 차량의 방향을 바꾸거나 선로 위치를 조정하는 장치) 이곳에 옛 수인선 협궤열차와 철도 시설물을 전시하는 문화공원을 조성한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 신송도역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구송도역 자리에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역사를 가리고 있던 가림막이 사라졌다. 공사가 지금 재개되는 것일까. 부리나케 사진을 다시 찍었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아 문화공원이 다 지어지겠구나. 어떤 식으로 협궤열차의 역사가 담길지, 전차대며 선로는 찾아낸 건지 몹시 기대가 된다.


이런 대목에서 나의 글은 형평성을 잃곤 한다. 얻기 어려운 자료, 보기 힘든 장면, 몇 번 도전하여 간신히 간 장소에 마음이 쏠린다. 더 중요한 것 같고, 더 강조해야 할 것만 같다. 그 까닭도 짐작이 간다. 내가 접근하기 힘들었던 장소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고, 그만큼 유실되기 시작했다는 것, 이대로 사라져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한다. 그래도 구송도역은 다시 살아날 날 테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5. 송도유원지

23.jpg 1960년대 말 송도 유원지의 모습, 출처-『문학으로 인천을 읽다』
24.jpg 지금의 송도 유원지 자리

송도유원지는 송도해수욕장을 말한다. 1930년대에 개발된 국내 최초 인공백사장 유원지로 월미도 조탕과 함께 대규모 관광지 개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순서로 보면 인천의 대표 유원지였던 월미도 유원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또 하나의 해양유원지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1936년 송도유원주식회사는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 일대를 송도라 부르며 50만 평의 부지에 해수풀, 조탕, 보트장, 아동유희장, 경마장, 스케이트장 등을 갖춘 근대식 유원지로 개발하고 1937년 정식 개장한다. 유원지 안의 해수욕장은 제방을 쌓고 모래를 30 트럭 깔아 인공적으로 만든 수문개폐식 해수욕장이었다. 수량 조절도 가능하고 맑은 물로 교체할 수 있으며 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주변으로는 해안도로가 있어서 산책도 할 수 있고 물때를 맞추면 아암도까지 건너다닐 수도 있었다. (아암도는 매립으로 사라진 섬이다) 유원지의 핵심시설인 송도해수욕장이 개설된 곳이 바로 능허대다.


6 ·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이 이곳을 군인휴양지로 쓰다가 철수했고, 1963년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가 경인지역 최대 여름 휴양지로 송도유원지를 꾸몄다. 1969년에 인천 대표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이후 30여 년 간 사랑받았지만,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송도국제도시 개발 계획에 따라 해안이 매립되면서 맞닿는 바다가 사라지고 수로로 물을 끌어다 써야 해서 관리가 어려워졌다. 시설은 노후화되고 오염이 심각해서 사업적 가치가 소멸하였고, 1980년대 들어서면서 에버랜드나 서울랜드의 명성에 밀려 해수욕장 운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가 동원투자개발에 매각, 2022년 9월에 문을 닫고 지금은 중고차 매매단지로 활용되고 있다.


양진채 소설 속 송도유원지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유원지가 폐장되면 이 안에 있던 놀이기구며 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압도적인 스케일과 스릴, 기교가 넘쳐나는 놀이기구라는 명성이 사라진 지 오래인 노쇠한 기구들이었다. 처음엔 그 기구들도 최신이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그 기구들을 타기 위해 줄을 서고, 타는 동안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때를 기억하지 않는다. 앨범 속에 갇힌, 까마득이 잊힌 요술 거울과 같은 때가 있었을 뿐이다.

(...)

한때는 이 도시 아무 집에나 들어가 앨범을 찾아 펼치면 이 유원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은 나올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 도시의 개항기 역사에도 등장하는 유원지였다.

-양진채, 「허니문 카」, 『검은 설탕의 시간』, 강


50년이나 사랑받던 송도유원지는 신도시에 편입되지 못했다.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던 주인공은 유원지가 폐장을 하게 되면서 무료 개방하던 마지막 날에야 가족들과 유원지에 놀러 나온다. 소설과는 무관하지만 당시의 영상을 찾을 수 있어서 사진으로 첨부한다.


25.png 송도유원지 사진, http://www.youtube.com 섬사랑꾼 문경숙, “송도유원지의 마지막 모습”

송도유원지는 송도에서 찾을 수 없다. 구송도에도 신송도에도 없다. 수출용 중고차 야적장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까마귀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닐 뿐. 사람도 없고 수영장도 없다. 그래도 인천상륙작전 앞쪽으로 새로운 카페며 음식점들이 오픈하여 오래 전부터 영업 중인 곳들과 함께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방문객은 어린 아이부터 연인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연령대가 넓어 보였다. 새로운 핫플로 여기고 오는 이들도 있고, 역사적인 장소로 기억하고 오는 이들도 있겠지.


주차를 위해 줄을 길게 선 음식점 맞은편에는 인천시립박물관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과 가천 박물관 등이 있다. 시립박물관 마당에는 학익동 고인돌이며 수인선 협궤열차가 있고, 뒤편으로 돌아가면 조병창에서 수습한 중국의 철제범종도 있다. 박물관 바로 옆 포장마차에서 만드는 토스트는 인천의 명물로 유명하다.


26.jpg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6. 신송도

신송도를 이야기하려면 IFEZ를 빼놓을 수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IFEZ-Incheon Free Economic Zone)은 2002년 7월 29일 정부의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발표”를 시작으로 2003년 10월 15일 개청하였다. 위치는 인천시 연수구(송도지구), 중구(영종지구), 서구(청라지구) 일원이다. 서울과 인접, 서울 도심지역에서 50km의 거리,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심지역으로 1~2시간 내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경제자유구역이란 국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외국인 투자자의 기업활동과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지역을 의미한다. 세제 지원, 행정 서비스, 편리한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국제기업도시라고 할 수 있다.


27.jpg 트라이볼

<트라이볼>

신송도에는 새롭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다. 우선 트라이볼은 전통 밥그릇인 사발 모양을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였고 Triple + Bowl ⇒ Tribowl이 되었다. 송도와 영종, 청라의 세 지역을 상징하기도 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상징하기도 한다. 2009년 인천세계도시축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다. 트라이볼의 공법은 내부에 기둥과 벽이 없는 3차원 곡면의 형태라고 한다. 기둥이 없는 공간은 벽 안에 철선을 넣어 심는 포스트텐션공법으로 지탱한다는 설명이 있다. 그 아래 서면 시원하고 얕게 고인 물에 햇살이 반짝거린다. 고층아파트들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이런 도시에서라면 불만도 불안도 불면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깊고 높아서 내색할 수 없을 것 같고, 알아챌 수 없을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무심한 미래도시에서 사람들은 걸어가고 사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킥보드를 타고 달려간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궁중부양을 한 것 같은 공중 도시에 내렸다. 당신이 사는 아파트다. 아파트는 외관이 독특해 푸른 물길을 연상시켰다. 귀가 울렸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같은 귀울음이다. 열악했어도 내 몸에 익어 익숙했던 상황을 벗어나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신미송, 「송도 제로백」, 『당신의 날씨』, 도화


신미송의 소설을 읽다가 제로백이 뭔지 그에게 물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을 말해. 그게 뭔데? 자동차의 성능을 알아볼 수 있는 기준 같은 거라고. 국산 자동차의 경우 예전에는 8~9초 정도였어. 스포츠카라면 5초 정도 된다.


소설 속 도시는 송도의 느낌이 적확하다. 너무 높아서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 곳. 저 위에서 어떻게 살까 싶은데, 혹시 저 위에 가면 저 아래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지려나. 그곳에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갈 것 같고, 그들의 걱정근심은 나의 것과 전혀 다를 것도 같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28.jpg 센트럴파크

<센트럴파크>

센트럴파크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곳이다. 최초의 해수 공원, 최대의 임해 매립공원. 여의도 공원의 두 배 면적, 올림픽 수영장 45개를 채울 수 있는 담수로 채워졌고 공원 시설물들이 모두 친환경 자재라고 한다. 그런데 왜 센트럴파크일까. 뉴욕 센트럴파크를 흉내 낸 것처럼 느껴진다. 안 그래도 송도라는 이름이 일제의 잔영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은데 ‘송도 + 센트럴파크’라니. 센트럴공원이라고도 부르고 센트럴파크공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던데 그야말로 총체적 혼돈이다.


센트럴파크에서는 수상택시를 탈 수도 있고(20분에 4,000원) 문보트(연인용이라고 2인이 탈 수 있다), 구르미보트, 패밀리보트 등 다양한 사이즈의 보트도 탈 수 있다. 사슴 사육장에는 사슴들이 살고 있고.


그 외 송도컨벤시아는 태백산맥을 형상화한 것으로 5개의 봉우리가 겹겹이 어우러진 산맥처럼 보이는데 지붕틀은 큰 활 같아서 어딘가를 향해 한껏 당겨진 것도 같다. 동북아트레이드타워는 68층 높이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G타워는 IFEZ 청사로 Green, Global, Growth를 의미하고 유엔기구, GCF(녹색기후기금) 등 국제기구들이 입주하고 있다. 그곳에서 고속엘리베이터를 타고 10초 정도면 33층 IFEZ 홍보관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데 29층에는 하늘정원테라스가 있어서 센트럴파크, 인천대교, 서해바다 등이 시원하게 한눈에 다 보인다. 그밖에도 송도에는 대학캠퍼스들이 있고, 회원제 할인마트가 있고, 한옥 호텔 경원재 앰베서더에 들렀을 때는 전통 혼례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와지붕 너머로 마천루가 보이고, 비행운이 보이고, 오색 리본이 혼례식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29.jpg 동북아트레이드타워
30.jpg G타워
31.jpg 경원재 앰배서더호텔 혼례식 준비 장면

미래도시에 있는 한옥 컨셉트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대들보 밑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거리에는 백팩을 맨 학생들도 보이고, 회원제 할인마트에서 피자를 사들고 오는 사람도 보이고, 자전거며 전동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사람도 보이고, 음식을 싣고 달리는 사람도 보이고,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과 개도 보이고. 세상에 없던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울울창창 자라는 나무들도 보인다. 저렇게 커다란 나무라니 그럴 정도의 시간은 안 되었을 텐데 옮겨 심은 뿌리가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아 다행이다.




송도에 다녀왔다. 처음인 곳도 있고 익숙한 곳도 있었다. 예전 그대로인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더 좋아지고 더 편리해지고 더 풍성해지고 더 세련되어졌다. 물론 더 쇠락한 곳도 있었다. 주말에 바람이나 쏘일까, 하고 찾아가던 송도였는데 이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송도의 이름은 오래도록 뜨거운 감자가 될 것 같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다. 일본의 잔재인 지명의 개명에 소요되는 비용이 막대하다면, 선택의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송도라는 이름의 수치와 모욕의 내력을 자꾸자꾸 거론해야 한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송도의 영광을 말할 때마다 그 치욕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요번 글을 준비하며 내내 마음에 남아있는 나무 한 그루 아니 두 그루 아니 몇 그루라고 말할 수 없는 나무가 있다. 능허대공원 입구 왼 편에 있었다. 중심의 나무는 고사하였다. 몸통이 어른 키 조금 위에서 툭 끊어져 있었다. 그 곁으로 팔목 두께의 세목들이 몇 그루나 있었다. 세목처럼 보이는데 등피가 단단한 것을 보면 원래 그렇게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일제히 넝쿨지어 올라가는데 죽은 나무 위로 싱싱한 초록을 짓고 있었다. 그 생기 그대로 중심의 나무를 허공으로 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무들의 시간도 사연도 알 수 없지만 망실된 것들조차 능히 허공을 가르는 힘이 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죽은 것, 사라진 것, 잃은 것들 없이 온전한 숨결을 가질 수 없다는 상징이 아닐까. 진초록이 번지는 능허(凌虛) 송도의 여름이었다.


32.jpg 능허대공원 앞의 나무



<참고문헌>

양진채, 『인천이라는 지도를 들고-소설 속의 인천』, 강

김진초 외 5인, 『인천, 소설을 낳다』, 케포이북스

인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편, 『인천학-문학 속의 인천, 인천의 문학』

이희환, 『문학으로 인천을 읽다』, 작가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I’m IFEZ』

신미송, 『당신의 날씨』, 도화

<인천일보>, 2019.08.15. [없었던 섬 송도] 송도, 이름을 가져오다

<인천일보>, 2019.03.11. “‘지명 쇠말뚝’ 마쓰시마, 40년 만에 송도로 돌아오다”

<인천일보>, 2019.08.15. “[없었던 섬 송도] 송도인가 왜?”

<인천일보>, 2021.11.22. “[한자 漢字 너 어디 있었니?] 146 송도(松島)”

<인천일보>, 2019.10.13. [인천문화읽기] “최첨단3D 기술로 되살아난 1600년 전 능허대”

http://www.youtube.com 섬사랑꾼 문경숙, “송도유원지의 마지막 모습”

인천시청, “사진으로 보는 역사” 중

<인천in.com>, 2021.07.05. 역전에서 한판 승부, 송도역.

<인천일보>, 2019.08.14. “인천도시역사관 ‘없던 섬, 송도’展”,

<조선일보>, 2022.07.12. “개발 간척 등으로 1년 사이 23㎞나 짧아졌어요”,

<경인일보>, 2021.09.01. “능허대 실경산수화, ‘인천 능허대’ 조선시대 붓터치 첫 공개”


* 이 글은 <학산문학> 2022년 가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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