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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빔

by 김박은경

겨울 잠옷은 푸른 페이즐리 무늬, 도톰한 소재는 0.5센티 간격으로 누벼져 있다. 누빔 바지는 검은색 민무늬. 무릎과 종아리의 누빔 간격을 달리해서 힙한 감이 있다. 두 벌의 누빔 옷에 기대어 이 겨울을 난다. 솜이라야 얇디얇지만 입기도 전에 이미 기분이 따스해. 무언가 몸을 둘러싸는 느낌. 패딩점퍼와는 다른 다정함이 있다.


"누비다"라는 말은 1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죽죽 지게 박다, 2 이리저리 거리낌 없이 다니다, 3 이마를 찡그린다는 뜻도 있다.


누비고 다닌다는 말,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려면 누벼줄 실 한 줄이 필요하다. 누빔 실이 없다면 위아래 천도 내부의 충전물도 흐트러지게 된다. 옷이라는 원형이 무너지게 된다. 누비고 다니려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누빔실 같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누빔실이 지나치게 많으면 자유로이 누비기 힘들 것 같다.


봄 논에 심은 모의 행렬, 공원에 심은 꽃들의 행렬, 편의점 매대에 가득한 상품들의 행렬, 자판을 눌러 이어지는 글자들의 행렬, 수저를 반듯하게 놓고 밥과 국그릇과 칼로 예쁘게 자른 김치 한 보시기까지 누빔은 이어진다. 걸음걸음, 순간순간 내 삶을 잘 누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빔의 자세는 느리게, 누빔의 마음은 정성을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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