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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것이 돌봄 받는 것

by 김박은경

오래오래 화분을 들여다본다. 어제와 다르고 오전과 다른 새 잎들을 본다.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서 나오는 새 잎을 본다. 자꾸 죽어버리는 새 잎을 본다. 부러질 듯 구부러진 가지를 본다. 어떻게도 펴줄 수가 없다. 기다리면 괜찮아질까. 왜 이렇게 웅크리고 있나. 곱게 바로 편 가지를 본다. 누가 이토록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었을까.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허공을 뚫고 나가는구나. 아주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것이 한 생물을 지고 가는구나. 위로 아래로 멈추지 않는 맥박이라니.


흙에 손가락을 대본다. 말을 걸어본다. 마른 듯도 하고 아직 괜찮은 듯도 하다. 잎들을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마른 소리를 내는가. 물을 준 날짜를 확인한다. 촉각과 기억에 의지하다 과습으로 다치게 한 기억이 있다. 그것들을 잘라내고 몇 번이나 되살아났는데. 작은 벌레는 없는가, 죽은 잎사귀 몇 개를 걷어내고, 시들어 회생이 불가능한 가지를 잘라주기도 한다. 미안해, 말하면서.


초록빛을 보는 게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지. 이게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울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즐겁다. 더 대견하고 더 아름답다. 지나가던 아이가 한 마디 한다. “꼭 이삿집 옮겨주는 사람처럼 잎사귀들이 튼튼해 보여요.” 그러게. 뭘 먹고 이렇게. 지상과는 한없이 먼 이 공중누각에서 접시만 한 흙의 얼굴 위로 아래로 뻗어나가니.


화단에서 오래 서성이던 엄마 생각. 그런 시간이 생기와 위로를 더해주었겠구나, 팍팍하고 고단한 하루 중 숨 쉬는 틈새였겠구나. 내가 돌보는 것들이 실은 나를 돌봐준다는 생각. 멀리 뻗어나가는 가지의 끝에서 그것의 밑으로 속으로 상상해 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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