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동에서
“구월”이라니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곳을 아침마다 지난다. 인천의 도심에 있는 동(洞)의 이름이다. 구월이 구월(九月)이라는 것은 뒤늦게서야 알았다. 구(龜)가 아닐까 상상만 했다. 월(越)이 아닐까 짐작만 했다. 거북이 등껍질로 미래를 엿본다거나, 거북이를 앞질러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구태의연한 짐작만 했다. 거북이처럼 오래된 도시 전설을 품고 있을 거라는 오해를 했다. 그러나 가을의 도시, 구월이었다. 삼월도 십이월도 아니고 구월이라니.
경기도 산포라는 곳을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며 서울이 아니라면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드라마 속 대사가 일상 속 대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도민이니 어딜 나가도 서울 나들이라는,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다는, 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말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 모른다고, 밝을 때 퇴근했는데 밤이라고 저녁이 없다고...’
인천도 다르지 않다. 친구들이 서울 언제 나오냐고 말할 때면 서울이 더욱 멀게 느껴진다.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것 같다. 아버지께 가는 서울은 아주 가까운데, 후딱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인데. 도시에서 도시가 아니라 나의 집에서 아버지 집까지라고 생각하면 멀고 가깝고 가 사라지는데. 마음의 거리는 다른 탓일까.
오늘 아침의 구월은 안개 속이었다. (안개가 아니라 미세먼지라지만) 안갯속의 구월은 더욱 신비롭다. 사람들은 형체만 보이며 걸어간다. 토스트 포장마차는 벌써 빵 굽기를 시작했고. 안갯속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 망설이는 사람. 백화점 사거리는 전조등 빛을 따라 무대장치 같다. 저마다 서두르는 두 발은 지상에서 약간 떠오르는 것 같고, 환상극의 등장인물들 같다.
구월동에는 대형 책방도 있고 백화점도 둘이나 있지만 상권으로는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루가 다르게 문을 닫는 상점들을 본다. 이른 저녁이면 파장의 분위기이고 유동인구는 들쑥날쑥하다. 그래도 구월동의 중앙공원을 횡단할 때면 정말 구월 같아서 계절과 무관한 푸른빛이 옷섶에 물든다.
구월동에 대한 시 한 편을 옮긴다.
구월
흙이 다 떠내려가서
수척해진 공원을 걸으며
구월을 부를 때마다
푸른 나무들이 높아지고
잎사귀마다 펄떡인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을 수도 있다
한 곳에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불행을 다행이라고 말하고 나면
작은 기도를 한 것 같다
구월은 당신이 태어난 달인데
구월마다 구월이 다시 오는
구원이라니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
익숙한 길을 건넌다
-김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