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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의 종소리

-종로

by 김박은경

종로는 연대기가 시작되는 느낌. 종로 1가, 종각에서 푸릇푸릇한 청년이나 소녀 티를 벗기 시작한 여자가 종로 5가에 이르면 중년의 신사나 아줌마가 되고 동대문에서 동묘에서 신설동으로 가면서 노인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다. 까닭도 없다. 전철을 타고 가면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지는 느낌도 실재하는데 그럼에도 신설동에서 소녀들을 마주치고 종각 햄버거집에서 졸고 앉은 노인을 마주치는데.


종로는 조선 건국 이후 한양 천도와 함께 서울의 중심부로 자리 잡고 있다. 종로 1가에 있는 종루(鍾樓)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종루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종로가 된 것은 1943년 4월 1일의 일이다. (종로구청 사이트 참조) 종로에 가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안국동으로도 종각으로도 광화문으로도 동대문으로도 혜화동으로도. 갈 수는 있지만 해는 저물고 다리는 아프겠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시간이겠지.


12월 31일 제야의 종을 치던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곤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지난 한 해와 새로운 한 해의 인사를 나누었는데. 집을 떠나온 후로는 마주 보는 대신 통화로 대신하였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못했다.


황인찬은 종각을 지나며 이런 시를 떠올렸나 보다. 끝부분, 할아버지와 아이의 호명에서 겹쳐진 시간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아이가 부르는 자는 자신을 부르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고, 돌아보는 자는 아무도 부르지 않은 자라는 것. 현실과 감각의 불일치가 이명의 종소리처럼 반복되는 밤이다.



종로일가


황인찬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 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 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보았다

(황인찬, 『희지의 세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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