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모두를 되찾는 곳이 낙원’ 일 거라 말한다. 낙원은 그런 곳일까. 네이버사전에는 1. 아무런 괴로움이나 고통이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즐거운 곳. 2. 고난과 슬픔 따위를 느낄 수 없는 곳이라는 뜻에서, 죽은 뒤의 세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낙원이라면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장소 같다. 제정신으로는 느낄 수 없는 장소일 수도 있다. 낙원이 장소가 아니라고 한다면 언제든 가능할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숨을 느리게 두 번 들이쉬고, 한 번 길게 내 쉬는 행동. 짧은 명상을 통해 괴로움도 고통도 바라보면 흩어지는 감정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 가능하다면. 그 깨달음의 지속까지 가능하다면 낙원이 가능할 지도.
그러나 그런 것이 낙원이라면 담백하여 맛이 없을 수도. 괴로움이 있어야 괴롭지 않은 것을 감각할 수 있고, 고통이 있어야 고통 없는 상태의 안온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심심하고 지루한 상태, 하품을 하고 배를 긁고 어쩐지 출출하여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고 물 한 잔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있을 때, 실은 낙원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어째서 낙원을 잃어버린 모두를 되찾는 곳이라고 했을까. 그에게의 모두란 사물이라기보다는 사람일 것 같다. 그렇다면 역시나 살아서는 찾을 수 없는 장소 같고. 저마다의 낙원이 다 다른 모습이고 다른 의미일 것도 같다. 나의 낙원은 시공간이 사라지면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무한 자유의 상태라고 하겠다.
종로에는 낙원동이 있고, 낙원상가가 있고. 낙원동(樂園洞)은 시내 중앙의 낙원지라 할 만한 탑골공원이 있으니 여기서 ‘락’ 자를 따고 이곳에 있던 원동에서 ‘원’ 자를 땄다고 한다.(서울지명사전) 낙원동이라는 이름을 짓던 사람들의 마음이 좋았겠다. 살기 좋은 곳을 만들고 싶었겠지. 부르는 대로 좋은 곳이 될 거라 바랐겠지. 낙원동을 지나던 시간, 어릴 때, 어른이 되었을 때 친구들과 오빠들과 또 미팅하던 남학생들과 또 글 쓰는 사람들과의 기억들. 누군가의 결혼식도 있었고 누군가의 재혼식도 있었고. 집까지 갈 길이 멀어서 한숨을 쉬던 그 시간도 낙원의 일부였을까.
각자의 낙원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서로 다른 낙원을 인정해 줄 때 공동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 타인의 낙원이 나의 그것과 너무 다를 때, 절대 이해할 수 없을 때, 받아들일 수도 없고 설득도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타인 또한 나의 낙원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겠지. 그러니 낙원이란 불가능한 것.
반대로 모두의 낙원이 똑같다면,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원하고 배척한다면 그것 또한 위험한 일 아닐까. 저울의 추가 왔다 갔다 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가 가능한 최대치의 낙원 감각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