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연년의 파수(把守) 3

-인천 부평의 조병창, 애스컴 시티, 캠프마켓

by 김박은경

4. 애스컴 시티에서 캠프마켓으로

몇 달 전 애스컴 시티에 갔을 때는 B구역을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드리나무 아래 단종 된 코카콜라 빈 병이 뒹굴었어요. 빛이 바랜 베이지색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 사이를 걸었습니다. 어떤 곳은 낡았고 어떤 곳은 멀쩡해 보입니다. 휴일 오후, 진초록 나무에 기대 앉아 콜라를 마시는 이국 청년들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햇살과 바람 속으로 빵 굽는 냄새, 누군가는 편지를 쓰고 누군가는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다이얼을 돌리고 누군가는 벽에 기대 담배를 피워 물겠지요. 그때 찍었던 사진도 함께 올립니다. 지금은 공사 중이지만 곧 개방된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마저 허물어질 담벼락이 철조망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금지된 장소, 부당한 성역, 길고 긴 결계를 끊고 활짝 열릴 순간을 기다립니다.


4-1.jpg 애스컴 시티의 담벼락
4-2.jpg 애스컴 시티 내 조병창 병원 건물
4-3.jpg 애스컴 시티 내 사병 식당
4-4.jpg 담을 허물고 개방된 캠프마켓 운동장


1941년 세워진 인천육군조병창은 1945년 9월 16일 애스컴 시티로 명명한 미군이 주둔합니다. 1973년 6월 30일 애스컴 시티가 해체되고 캠프마켓으로 축소, 1996년부터 캠프마켓 되찾기 및 공원화 추진 운동, 2002년 3월 29일 캠프마켓 반환 결정, 2019년 12월 11일 캠프마켓 A·B구역 및 오수정화조 부지인 C구역 반환, 2020년 10월 14일 캠프마켓 B구역 시민 개방, 2021년 10월 20일 캠프마켓 인포센터가 문을 엽니다. 2022년 하반기에 남은 D구역도 반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려 80여 년만의 반환입니다!


애스컴 시티에는 보급창, 공병대, 항공대, 의무대, 후송병원 등이 들어서면서 거대한 도시가 됩니다. 어쩌다 한번 미군기지가 개방되면 부평 사람들은 신세계를 보았다고 해요. 기지 안에 있는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들을 위한 식당, 클럽, PX, 병원, 도서관, 체육관, 교회 등의 편의시설이 그것이지요.


Thomas D. Casey(1968~1972 복무)는 부평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부평은 저에게 굉장히 특별하고 멋진 곳이에요. 군인으로서 제 인생 최고의 시절이었죠.”

“당시에 김포공항으로 들어와 버스에 탄 후에 부평을 갔어요. 한국에 도착해서 필요한 신고 및 등록 절차를 거친 후에 다시 각자 버스를 타고 대구나 원주, 파주, 동두천, 서울 등으로 갔어요. 모든 주한미군이 다 부평에 머물고 싶어 했어요. 정말 좋은 곳이었기 때문에요. 당시에는 부평이 군 중심지였어요.”

-부평역사박물관, <헬로우 애스컴 시티, 굿바이 캠프 마켓>


당시 복무했던 Tim Norris(1973~1975 복무)가 찍은 부평 신촌의 사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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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jpg Tim Norris가 촬영한 부평 신촌, 출처는 부평역사박물관 <헬로우 애스컴 시티, 굿바이 캠프 마켓>

그때 애스컴 시티에서는 풍부한 물자가 흘러나왔습니다.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도 넘쳐났고요.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위험한 감정들 사이로 미지의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내려는 안간힘이 있었겠지요. 이 도시 곳곳에는 일제의 흔적 대신 영어로 된 간판들이 내걸렸을 겁니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휘황찬란하고요. 새로운 인종,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음악, 새로운 향기가 여기저기 출몰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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