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연년의 파수(把守) 5

-인천 부평의 조병창, 애스컴 시티, 캠프마켓

by 김박은경

6. 양키시장과 부평시장

어두워진 간판에 ‘송현자유시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1945년 광복 후 부평에 애스컴 시티가 자리하며 미군 PX에서 판매하는 미제 물건들이 흘러나옵니다. 사람들은 이를 양키시장 또는 블랙마켓이라고 불렀는데요. 이 시장은 1950~1960년대까지 활발히 운영됩니다.


6-1.jpg 송현자유시장(양키시장)

미제 물건을 유통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지촌 여성들이었고요.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도 물건을 가지고 나오곤 했답니다. 물자가 부족했던 전후에 미제 물건들은 큰 인기였다고요. 1969년 송현자유시장으로 정식 등록되었을 당시 1,485평에 662개의 점포가 자리하고 있었고요. 한국 최대의 암시장으로 불리는 남대문시장에도 물건을 공급할 정도로 거대했다지요.


6-2.jpg 양키시장

뭘 팔았냐고요? 뭐든 다요! 미군 군복, 군용 담요, C-레이션, 담배, 커피, 화장품, 외국잡지, 텔레비전, 라디오와 각종 기계까지 다종다양했고요. 서양 사람들의 옷은 워낙 커서 수선집이 많이 생깁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재봉틀은 이제 적막합니다. 그때 자르고 다시 박아 맞춤했던 옷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 옷을 입고 웃고 울고 살던, 어리고 젊고 늙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6-3.jpg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들, 부평역사박물관


양키시장은 이제는 큰길 쪽의 점포 몇 곳만 열려 있습니다. 극장도 문을 닫았고요. 순대골목 에 문을 연 집이 절반도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쌀쌀한 겨울 오후, 늦은 점심을 드시는 분들이 보이네요. 이제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서서 눈을 감아 봅니다. 적적한 시장 골목으로 영어와 우리말 음성들이 차오릅니다. 치기 넘치는 청년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누군가 싸우는 소리에 이어 여인의 울음소리도 들립니다.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날의 양키시장이 있어 오늘의 부평시장이 있으니까요. 어떻게든 이어진다고, 무엇인가 남아 있다고 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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