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연년의 파수(把守) 6

-인천 부평의 조병창, 애스컴 시티, 캠프마켓

by 김박은경

7. 애스컴 시티와 음악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말과 글조차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시절의 아픔과 서러움을 위로하는 <목포의 눈물> 같은 노래들이 사랑받았는데요. 1920년대 말부터 서양에서 흘러온 재즈가 도시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습니다. 김해송의 <청춘계급>을 들어보세요. ‘tap dance, champagne, palace’ 같은 외래어 단어가 등장하는 경쾌한 노래입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남북이 갈라지고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이별과 피난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별의 부산 정거장> 같은 노래들이 사랑받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외국음악의 시대가 열립니다. 1950년 9월 이후 산재한 미군부대마다 부대원들의 유흥과 여가를 위한 클럽이 생겨나는데요. 애스컴 시티에서는 미국에서 내한한 유명 팝 가수나 쇼단들이 내한공연을 하다가 점차 출연료가 저렴한 한국 음악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7-1.jpg 1950년대 내한 미국가수 애스컴 미군클럽 공연, 출처는 부평역사박물관 <헬로우 애스컴 시티, 굿바이 캠프 마켓>


19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하던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은 단행본으로도, 1956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요. 교수 부인과 남편의 제자가 카바레에 들어설 때 들려오는 음악이 바로 애스컴 시티 클럽에서 연주되던 <Cherry Pink and Apple Blossom White>입니다. 페레즈 프라도 악단의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체리 핑크 맘보>라는 제목으로 연주되었습니다. 감미롭고 풍성하고 사랑스러워요.


7-2.png 영화 <자유부인>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부터 김시스터즈, 한명숙, 현미, 패티김, 배호, 이시스터즈 등 많은 한국 가수들과 신중현의 에드포, 록&키(키보이스의 미8군 활동 밴드) 등의 밴드로 구성된 쇼단들이 1960년대 말까지 부평 미군클럽의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애스컴 시티와 인근 지역에는 미군과 외국인 전용 클럽들이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졌고요. 애스컴 시티에 근속된 한국인들과 미군 클럽에 출연한 한국인 연주자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귀한 악기, 팝송 원판, 유성기와 LP 등으로 부평은 풍성한 음악의 도시가 됩니다. 지금의 부평이 ‘부평음악도시축제’ 등으로 사랑받게 되는 단초가 되었지요.




이렇게 캠프 마켓(1973)을, 애스컴 시티(1945)를, 조병창(1941)을 돌아보았습니다. 긴 이야기인데 맛만 보여드렸어요. 부평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사라진 것들을 크고 선명하게 호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용산의 미군기지가 아름다운 공원으로 사랑받게 된 것처럼 이곳 또한 지난한 폐허를 지나 거듭날 거라 믿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기억과 기록의 파수꾼이 되어주세요.


<참고서적>

부평역사박물관, <헬로우 애스컴 시티, 굿바이 캠프 마켓>, 2020. 05. 27

부평역사박물관, <도쿄제강 사택에 담긴 부평의 시간>, 2021. 10. 25

<굿모닝인천> 2022. 01 “80년의 기다림, 다시 찾은 땅”

부평문화원, “부평지하호”, (조건, “일제 말기 인천육군조병창과 부평지하호”)

부평문화원 기획전시실,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 2021. 07. 06 ~ 12. 31

부평문화원, <토굴에서 부평을 찾다>, 2018 지속가능 부평토굴 만들기, 2019. 07. 29

부평문화원, 이상의, <부영공원 지하시설 콘텐츠 발굴프로젝트 기초조사보고서>, 2020. 12 부평문화원, <일제강점기 한반도 전쟁유적의 현황과 과제>, 2021. 10. 22 심포지엄 중

(<한반도의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과 한인 강제동원>에 관한 토론문, 김윤미)

부평문화원, <부평愛>, 통권 61호 (2021 소식지, 특별호)

화도진문화원, <노동자의 길> , 2021. 09. 24

인천시립박물관 학술회의, <미군기지 캠프마켓과 인천육군조병창 유적>, 2021. 11. 06

중앙일보, “신중현이 노래했던 그곳... 부평미군부대 인근 음악도시 된다” 2015. 06. 19

뉴시스, “‘양공주, 양색시’.. 홀로 남은 70대 노인의 고독사

[①기지촌여성, 그들은 지금..]”, 2022. 02. 03

이설야, 『굴 소년들』, 아시아

헬로!서울경인, “강제징용의 아픔 부평지하호, VR로 재탄생”, 2021. 04. 16 (유튜브)

헬로!서울경인, “일본, 부평 지하서 무기 만들려 했다”, 2021. 04. 19 (유튜브)


* 이 글은 <학산문학> 2022년 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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