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마을 소녀들, 고양이를 부탁해(1)

-인천 배다리 우각로

by 김박은경
1 우각로 벽화.jpg 우각로 벽화

소녀들이 연푸른 벽 속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반팔의 교복차림이니 여름인가 봅니다. 2001년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다섯 명의 소녀들이 뛰어갔지요. 그곳은 동인천 지하상가였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오마주되었지요. 오늘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리의 소녀들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장소는 배다리 주변이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여러 곳에 있다는 배다리는 동인천역 앞에도 있습니다. 동구 금창동(금곡동과 창영동), 송현동 일대인데요. 배다리는 ‘배를 대는 다리’를 뜻합니다. 오래전 작은 배가 바닷물이 들어오던 수로를 따라 철교 밑까지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제물포에 각국 조계지가 만들어지고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곳이 인천 배다리입니다.


우각로

우각로는 배다리에서 옛 알렌별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구부러진 소의 뿔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쇠뿔고개’라고도 불렀습니다. 이곳이 당시 중심 거리였다고 해요. 한적하고 자그마한 동네입니다. 재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지역에 2006년 이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텃밭을 가꾸면서 1970~80년대의 생활상이 남아있는 모습을 차분하게 보존하고 새로이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잘 관리된 적막이었습니다. 텅 빈 화분들은 봄을 향해 길게 줄을 서있어요. 초록빛 긴 호스는 멀고 긴 꿈에 빠져서 밟으면 꿈틀거릴 것 같았고요. 어디선가 부드럽고 가는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라디오를 켠 것일까 두리번거리는 내내 끊어지지 않았어요. 고저장단만 느껴질 뿐 가사는 알 수가 없었는데요. 할머니 세 분이 낡은 소파에 앉아 화음을 맞추며 노래를 하고 계셨습니다. 쌀쌀한데 괜찮으신가, 인사를 하니 입술은 노래하며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십니다.


‘꿀꿀이죽 골목’이라는 표지석도 보았습니다. 원래 창영동과 유동삼거리 사이의 건널목은 통행하는 인구가 많았는데 이 사잇길로 꿀꿀이죽 거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잔반으로 끓인 죽이지요. 막일꾼, 노동자, 피난민, 지게꾼 같은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해주었는데요. 사람들마다 기억이 달라서 고급 음식이라는 증언도 있었고, 비위가 상해 먹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더 어려운 사람들은 옥수수죽이나 학교에서 주는 미군원조 우유죽으로 끼니를 연명했다고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동생들을 돌보았을 소녀들 생각이 납니다. 어린 소녀들이 더 어린 동생을 업고 그 죽을 사려고 긴 줄을 서있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한 그릇의 죽을 나누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시절이 있었겠지요. 너무 뛰지 마라, 배 꺼진다 하셨을 가난한 엄마와 할머니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하는 일로 일생을 소진하는 방식이라니. 엄마가 있는 엄마의 아이들이 정신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더 안정적으로 성장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2 배다리 그림지도.jpg


3 우각로 꿀꿀이죽 골목.jpg


2.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배다리 성냥마을박물관은 2019년 3월 15일 개관했습니다. 옛 동인천우체국 건물을 개조해서 지었고요. 그 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었습니다. 박물관 앞 에 그 연원을 밝히는 바닥동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4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jpg


5 조선인촌주식회사 터를 알리는 바닥동판.jpg


조선인촌주식회사는 1917년 10월 동구 금창동 2000여 평의 터에 자리를 잡습니다. 직공 500명, 연간 7만 상자 생산, 국내 소비량의 20%를 담당했고요. 1930년대에는 전국 성냥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 공장으로 성장합니다. 신의주와 평양에 지점을 내고 전국으로 판로를 개척한 일제강점기 대표적 성냥공장이었습니다. 서울이나 지방 학생들이 이 공장 견학을 수학여행 코스로 삼았을 정도였다지요.


인천은 압록강 오지의 나무들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성냥 재료가 되는 나무를 구하기 쉬웠고, 공장을 세울 부지가 많았으며, 공장 가동을 위한 변전소 설치 등 전력 사정이 좋았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성냥공장 설립의 최적지였습니다. 철저히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어린 소녀부터 아줌마들까지 동원되었는데 성냥개비에 인을 붙이고 성냥을 곽에 넣는 기술이 귀신같을 정도였다지요. 또한 집집마다 재료를 받아 밀가루 풀칠을 해서 성냥갑을 만드는 가내수공업이 번창하고요. 공장 주변 500여 가구가 성냥갑을 접고 나르느라 분주하였다지요. 꽃이 피어도 눈비가 내려도 황 냄새가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돈을 버는 일이라고는 정미소에서 돌을 고르는 게 전부였던 때에 성냥공장은 여성 고용 창출에 한몫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루 평균 13시간 일을 해도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의 수입이었고요. 일본인 고용주의 민족차별과 비인격적 모욕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20년대~1930년대에 여러 차례 동맹파업이 이루어지는데요. 이는 인천항 주변 정미공장 여공들의 파업과 함께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됩니다. 네 차례에 걸친 조선인촌주식회사의 동맹파업은 회사가 파업 참여자를 모두 해고하고 새로 노동자를 채용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일제강점기 만연했던 조선인 노동력 착취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6 조선인촌주식회사 노동자 동맹파업 연보.jpg 조선인촌주식회사의 노동자 동맹파업 연보, 출처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인쇄물


3.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인천 배다리는 전국 3대 헌책방거리의 한 군데로 손꼽히던 장소입니다. 개항 당시 조계지로 외국와의 문물 교류가 많아서 희귀한 양서나 일서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40여 곳의 서점들이 밀집해 있었다는데 지금은 몇 군데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계간 『작가들』에서 2007년 가을에 “작가들, 도시공간 속을 거닐다-시와 산문으로 보는 배다리” 특집이 진행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인천 동구 배다리 일대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삶과 문화,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억압하는 갖가지 폭력의 문제를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귀중한 성찰이 독자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요. 시 한 편을 소개해드립니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들 찾아볼 길 없고

소성주로 날리던 인천양조장은 건물만 을씨년스러운데

몇 안 남은 헌책방끼리 서로 어깨를 맞대고 저물어가는

배다리의 밤

산업도로 공사현장 앞에 자리잡은

<개코막걸리>집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누런 양은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비우며

콩되비지를 떠먹는 동안

옛것들이며 헌것들이며는 모두 다

건너편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서 곤한 잠 자고 있다

달빛 대신 공사장 불빛이 어룽대는

막걸리잔을 비우며

나는 뭐라고 웅얼거렸는가

너는 뭐라고 고개 주억거렸던가

술자리가 파한 뒤

취한 건 세상이지 내가 아니라고

애써 변명할 것도 없이

똑바로, 똑바로 걸어보자고 다짐하는데,

그 옛날엔 바닷물이 예까지 밀려들기도 했다는데,

꿈결엔 듯

출렁이는 물결 소리 들려왔던가

그렇게 깊어가는 배다리의 밤길을

쓸쓸히, 쓸쓸히 돌아나왔던가

(「배다리의 밤」, 박일환, 『작가들』 (2007 가을호) 게재)


<고양이를 부탁해>의 다섯 소녀들도 이곳에서 책을 사고 이 거리를 돌아다녔을 것 같습니다. 박경리 선생님도 금곡동에 서점을 냈었다고 합니다. 책을 분류하다가 희귀한 책을 만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읽었고, 집에 가져와서도 읽으셨다고 해요.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 배다리에서 살던 때라고도 하셨지요.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서점을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은 읽느라 바쁘고, 누군가 원한다 해도 팔기 싫을 테니까요.


조선시대 이덕무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그가 쓴 짧은 자서전의 제목은 ‘간서치(看書痴)’, 책 읽는 바보였습니다. 평생 독서광이었으나 가난했던 그가 ‘맹자’ 일곱 권을 팔아 밥을 잔뜩 해먹고 유득공에게 자랑을 합니다. 유득공 또한 오래 굶었던 터라 즉시 ‘좌씨전’을 팔아 같이 술을 먹습니다. 맹자가 밥을 지어주고 좌구생이 술을 권해주었다면서요. 그러나 서글퍼졌다고 토로하지요.


이 거리의 아벨서점이나 한미서점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주인공 김은탁(김고은)도 여고생이었지요. 영화 <극한직업>에서 수원왕갈비통닭집이 있던 곳도 배다리 헌책방거리이고요.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 서현진과 이민기가 우연히 만나는 장소는 한미서점입니다.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뮤직비디오에는 배다리의 대창서림(내창서림으로 나옵니다)과 도원역으로 가는 육교며 철길 옆길이 나오지요. 정말이지 드라마틱한 거리입니다.


7 배다리 한미서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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