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할 까닭이 없다

by 김박은경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큰 인기라는 기사를 읽었다. 시집을 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젊다는 이야기. 그들만의 리그가 저기 있고 아웃사이더의 자리가 여기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언제나 아웃사이더라고 느꼈으므로 서운할 까닭이 없다, 이것이 첫 번째. 그리고 그들 또한 20, 30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젊다가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므로 그때는 다시 도래하는 젊은 시인들이 주도하게 될 테니 서운할 까닭이 없다, 이것이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아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것. 청탁이 있거나 없거나 묵묵히 쓰던 대로 좋은 시를 찾아다니다가 실패하고 실망하고 가끔 환희로운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이므로 서운할 까닭이 없다, 이것이 세 번째. 번외로는 좋은 시가 있다는 것,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나만의 시, 나만 쓸 수 있는 시, 나에 의해 발견되고 나만의 발성으로 쓸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는 것.


이쯤 되면 왜 쓰는가, 묻게 된다. 나는(당신은) 왜 쓰는가. 왜 쓰고 싶은가. 어리거나 어리지 않거나 왜 쓰는가. 우리는 쓰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서, 기억하면서, 심지어 쓰지 않으면서, 쓰고 싶어 하면서, 혹은 절대 쓰고 싶지 않다고 억지를 부리면서도 ‘쓰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동굴 벽에 비밀스러운 그림을 그리던 최초의 누군가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남기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일기, 한 줄의 문자, 쓰다 만 메일, 손 편지 같은 것들. 돌아보면 어리석고 바보 같고 웃기고 유치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여, 왜 이러나 반성하게 된다. 후회막심한 순간들,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들 조차 나의 짓이고 나의 선택이고 나의 삶이다. 모두가 뒤죽박죽 엉켜서 나라는 스프를 만들었다. 그것은 달고 쓰고 맵고 짜고 밍밍하고 이상하지만, 뜨겁고 차갑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맛이다. 어쩔 것인가, 마셔야지. 그래서 오늘 일기에는 ‘나여, 좀 열심히 쓰자’는 다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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