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하고 중얼거리면

by 김박은경

칼에 베이면 칼이 무섭지만 칼이 아니면 벨 수 없으니 다시 칼을 들어야 한다. 칼이 아니면 가위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감자도 호박도 반드시 칼이 필요했다. 아, 두부도.


왜 다치냐, 하면 마음이 다른 곳에 있을 때 시선도 그곳으로 함께 가니까 조심도 그리로 가버리니까 무엇을 베는 줄도 모르고 칼질을 하는 거다.


다친 손가락 때문에 고생 좀 했다. 무딘 칼로 얼린 토마토를 급히 자르다가 베였다. 그것도 저녁식사를 차려놓은 상태에서 해독주스를 준비해서 불에 안치자는 욕심으로 서둘렀다. 얼린 토마토는 얼마나 딱딱하던지. 녹은 다음에 하면 될 것을. 아프고 겁이 나서 자세히 볼 엄두도 안 나는 손가락을 꽉 쥐고, 심장보다 높이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 꿰맸다. 마취주사도 파상풍 주사도 맞았다. 지금은 다 나았지만 약간의 이물감을 얻었다. 상처 자리가 원래보다 도톰해졌다. 무딘 느낌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자판도 두드리고. 지문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이제 칼을 들 때마다, 뜨거운 것을 들 때마다 “조심”하고 중얼거린다. 속으로 할 때도 있고 소리 내어 말할 때도 있다. 그러면 바라볼 수 있고, 속도가 살짝 느려지면서, 정말로 조심하게 된다. 이 얘기를 하니 L은 그거 공장에 일하시는 분들이 아침 체조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과 같다며 웃었다. 맞네, 바로 그거네요.

중얼거리는 말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적재적소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조심, 천천히, 가만히, 차분히, 힘차게, 또 뭐가 좋을까... 구호처럼, 주문처럼, 기도처럼, 때로는 화두처럼 말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에 살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운할 까닭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