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
사랑하는 둘째 딸에게
네가 내게 해준 말은 아빠가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단다.
너랑 막내랑 같은 병원에서 1시간을 기다려서 예방접종을 맞은 날! 기다리고 지치고 주사 맞고 아파서 힘든 너희들을 위로하고 싶었어. 그래서,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 인생 네 컷을 다니기로 마음먹고 동네를 같이 돌아다닌 날이었어!
처음에 아빠가 앞장서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 막내는 "아빠! 어디 가요?"라고 자꾸 묻는데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를 따라오길래 또 눈치챘나 싶어서 조금 김새는 마음도 있었지. 근데 진짜로 너는 눈치를 채고선 아빠 뒤를 따라왔다고 하더라. 배스킨라빈스에 들어가서는 키오스크에서 각자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두 개씩 고르라고 했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우리만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라는 반응이었지.
아빠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오히려 좋았단다. 우리 집에 이쁜 딸 둘과 함께 동행하는 오랜만의 기회에 너희 둘을 위한 특별한 날을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오히려 좋았던 것이지. 그렇게 먹고 나서 또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인생 네 컷을 들어갔지. 갑자기 왜 들어가냐는 너의 반응에 "막내는 여기 오기 쉽지 않고 너무 오고 싶어 하니까!"라고 말하면서 너희 둘의 이쁜 모습이 인생 네 컷 사진을 찍었으면 했단다.
별로 찍고 싶지 않다는 너와 너무너무 찍고 싶다는 막내를 보면서 인생 네 컷 사진을 기분 좋게 찍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발, 소품들을 자꾸 추천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즐기도록 제안했었지. 그런데, 아빠의 걱정과 염려는 정말 불필요하더라. 아빠가 원하는 소품은 하나도 고르지 않더니 자기들이 좋아하는 소품들을 쏙쏙 골라서 촬영부스에 들어가서는 "아빠! 결제해 주세요!!"라고 소리치는 게 너무 귀엽더라.
그렇게 인생 네 컷을 신나게 찍더니 사진을 들고 나오는데 얼굴이 얼마나 환하게 빛나던지! 보는 내내 기분이 너무 좋더라. 특히 친구관계를 걱정하면서 늘 전전긍긍하느라 힘들어하는 네가 굉장히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뿌듯하더라. 그런 너희들을 데리고 무인뻥티기가게를 들어갔더니 "여기는 맛있지만 양은 작고 비싸서 별로예요." "나갈래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이쁘더라. 그냥 모른 척하기처럼 원하는 거 집어서 "사주세요!"그럴 줄 알았는데 "아빠! 너무 비싸요. 나가요!"라고 하는 게 애들 같지 않으면서도 기특하기도 하더라.
그런 너희들을 데리고 지나가다가 무인인형 뽑기 방을 들어가려고 주춤거렸더니 "가지 마요! 별로예요."라고 하더라. 그런 너희들 말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아이들이 너무 컸구나. 이제 비싼 거, 안 비싼 거를 가릴 줄도 안다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맘껏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해줄까, 안 해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
인형 뽑기 방도 안 가길래 뭐라도 더 해주고 집에 가고 싶어서 동네를 돌고 도는데 네가 뭔가 한마디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덜컥 내려가면서 씁쓸하고 슬펐단다.
아빠! 이렇게 해주고 후폭풍 있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런 말은 정말 속상하더라. 후폭풍? 후폭풍?
그 말을 너에게 들었을 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물었는데 네가 해준 대답이 더 슬프더라.
"내 친구들은 이렇게 해주고나면 부모님이 휴대폰을 뺏기도 하고, 못하게 하는 것들이 생긴대요."
아이고!! 그 말은 진짜 속상하더라. 물론 아빠도 너희들이 약속을 안 지키면 "약속 안 지켰으면 하지 마! 약속대로 일주일 금지야!"라고 하긴 하지만.. 이 날은 아빠가 딸 둘이 너무 이뻐서 너희가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예방 접종'한 것을 위로한다는 것을 핑계로 이것저것 조건 없이 즐기도록 해주는 저녁이었어! 그런데, 다른 친구들 부모님이 했다는 것을 말하면서 '후폭풍'을 말하길래 너무 슬펐어.
부모라는 것은 자녀가 세상을 잘 적응해서 홀로서기하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같은 존재인데 말이야. 아빠가 자꾸 선장처럼 너희들을 끌어당기면서 '저기가 목적지다! 힘내서 가자!!'라고 늘 끌고 다니는 것 같아서 반성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번 말은 진짜 충격이더라. 다른 부모님들의 행동도 그렇지만 아빠도 그런 거 아닐까라고 걱정하거나 궁금해하는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어. 아빠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고 그런 아빠가 되지 않도록 노력중이라서 말이야.
항상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고
실수한 것은 다음부터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어른이 될게.
늘 하지 마라 말하고,
실수하면 버럭 화를 내고,
잘했는데도 격한 호응으로 격려해주지 못한,
아빠가 사과할게.
많이 반성하고 더 좋은 어른이 될게.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더 많이, 더 먼저, 늘
사랑하고 사랑할께!!
정말 놀랐던 날이었습니다.
두 딸들이 예방접종하기 위해서 1시간을 병원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접종이 끝나고 나서 보니 둘째는 양쪽 팔에, 막내는 왼손잡이인데 왼쪽팔에 접종을 받아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방접종이 끝난다면서 길거리에서 둘이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런 모습이 너무 이뻐서 배스킨라빈스, 인생 네 컷, 뻥튀기집, 무인인형 뽑기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서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저의 사랑의 마음과 달리 "이러고 나서 집 가면 후폭풍 있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아이들은 늘 상처받고 지내며 또 상처받지 않으려고 늘 눈치 보는 것 같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여차하면 "아빠 뭐 하시나?"라고 저의 행동반경을 살피는 것을 보면서 속상하고 미안한 날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아주 최고의 아빠는 아닙니다. 늘 고치고 돌아보고 있고요. 그런데, 다른 집 아이들은 더 심하게 제재받고 지낸다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가 받은 축복, 선물인 아이들을 진짜 사랑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저부터 아이들을 잘 대해주고 사랑하면서 귀 기울여 듣는 아빠 되려고 합니다.
둘째 딸은 자꾸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너무 조심합니다.
예전에 비해서 많은 것들을 쉽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떤지는 전혀 몰랐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제법 커서 돈에 대한 느낌을 알다 보니 어느 정도 쓰면 어떤 수준의 삶인지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각자의 집을 평가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잖아요."라고 말하고 "하고 싶지만 안 할게요."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들을 때마다 엄청 미안하고 힘듭니다.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더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추가로 더 많은 돈도 벌어서 아이들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해 줄 수 있는 아빠도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둘째와 막내랑 데이트하던 날 충격과 만감이 교차하던 시간을 잘 견디고 딸에게 그날의 감정을 설명하면서 사과하고 더 좋은 아빠가 되려고 다짐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읽어주시니 또 이런 노력도 하게 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Vika Strawberr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