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감사 초심
길을 걸으면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여전히'감사합니다. 그런 감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여전히'감사하고요. 수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보면서 많은 감사와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길에서 본 '깨알'들을 알게 되면서입니다.
길에서 본 '깨알'들의 진가를 알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마음준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깨알'들을 알게 되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도 알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의 '만남의 찰나'도 소중하고요. 만남 속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깨달음'은 더 소중합니다. 브런치 내에서 소통하는 '찰나'속에 '공감'은 저를 깨닫게 하고요. 저를 성숙하게 합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한주를 살아내고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또, 길에서 만난 '깨알'들을 소탈한 마음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 길거리 깨알들..
1. 투명한 간판..
뭔가를 알리고 싶은 간판인지, 공간을 확보하고 싶은 입간판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보자마자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보도블록 위에 있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이랬습니다.
'나도 저렇게 투명하고 싶다!'
입간판이지만 안내하고 싶은 것 말고 저 안에 보호하고 있는 화분이 다 들여다보이는 게 좋아 보인다.
나도 저렇게 투명한 마음을 가지고 솔직하게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에 휴대폰으로 냉큼 찍었던 것입니다.
3. 선을 넘어라..
따릉이 반납선을 보면서 웃고 찍었습니다.
나름대로의 규칙대로 '선 안쪽'에 와서 따릉이를 반납하라는 것입니다. 그 '선'을 보면서 '선을 넘도록 안내'하는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살면서 지금까지 늘 '선을 넘지 말라고' 은근히 내색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지 말아 주기를' 은근히 내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넘지 말아야 될 것 같은 선'을 넘지 못해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친구들도 '친구라면 적어도 친구라면 숨기는 게 없고 힘들 때 힘들다! 도와다오!'말하는 게 친구에 대한 도리라고 하고요. 그런 것을 못하고 살았던 것을 반성하면서 '선 넘어와서 도와다오!' '제 마음을 활짝 열겠습니다. 나누시지요.'라고 하려고 다짐해 봅니다.
4. 모녀지간..
힘들 만큼 힘들고 배고플 만큼 배고파질 만큼 걷고 걸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판을 보자마자 좋아 보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녀지간이라고 하면 나이가 먹으면 '철철 지 원수 같은 사이'라고들 합니다. 아들하고는 대화해도 딸 하고는 영 대화하고 싶지 않아 진다고들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 되었는데 모녀간의 그런 상황이 절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요.
그런데, 간판에 다정한 모녀지간의 캐릭터가 있는 것만으로도 꼭 들어가 보고 싶었고요. 우리나라 많은 관계들이 저렇게 함께 일하고 함께 어울려지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2. 마음에 감사 더하기..
1. 어젯밤에 그리고 담날 아침..
길을 지나가면서 깨알들을 만나면 종종 사진을 찍습니다. 이미 깨알에 대해 감상을 적어서 올린 사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함께 모여서 나누고 싶어서 다시 불러낸 사진도 있습니다.
아침에 사무실 근처에 조금 일찍 도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분주하게 다다닥 걸어가는 무리들 속에서 마치 출근길이 아닌 것처럼 여유를 부리면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매우 즐겁습니다. 그러면서 골목골목을 돌아서 걷는데 그러다 보이는 것은 어젯밤의 치열했던 흔적들과 그 치열함에 혹여 힘든 아침을 맞이할까 봐 속을 달래 놓고 집으로 달려간 흔적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때 얼굴이 홍조가 되고 벨트를 넘어서서 배가 나오고 손이 떨릴 만큼 마시고 권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늦게 들어가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면서 일찍부터 최대한 빨리 취하도록 속도전도 했고요. 해가 꺼지기 전에 이미 취해있다면 세상이 알록달록 모두 아름다워 보여서 좋았고요. 그렇게 빨리 달렸는데도 이미 해가 가라앉은 깜깜한 밤이라면 홍조가 된 얼굴이 들통나지 않아서 행복하곤 했습니다. 평상시 걸어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가 20분 만에 도착하는 것 같아서 매직같았습니다. 기분만 그런 것이었지요. 격렬했던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기 전에 어딘가에 쪼그려 앉아서 나눠마신 컨디션은 진시황이 찾던 불로장생의 특효약같이 몸을 불사조로 만들어준 것같아서 든든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늘 행복했고 아쉬워서 벤치에 앉아서 빨리 문 닫은 주변가게들을 원망하며 각 1병씩 더 마시기도 했고요. 옆테이블에서 술병들을 줄세우면서 먹는 것을 보면 우리 테이블이 더 많은 술병들을 줄 세우자면서 일행들과 무언의 경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보내면서 지냈던 적이 생각나게 해주는 '깨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하면 세 아이를 낳겠다면서 술을 끊었습니다. 아이들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빠가 되고 아내가 수유를 하면 안고 토닥이면서 트림을 시키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었고요. 아이들 목욕물을 확인할때면 자연스럽게 팔꿈치를 넣어서 확인할 정도로 육아에 진심인 아빠가 되겠다며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길에서 보는 어젯밤 흔적 또는 광란의 즐거웠던 현장의 잔해들이 그런 생각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면서 지금의 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자리에 갈 일도 없고 부르지도 않지만 허전하지는 않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고요. 저녁식사후에 간식을 앞에 놓고 혼낼 때도 있고 함께 웃을 때도 있지만 가족이 둘러앉아서 저녁에 대화 한 토막을 나눌 수 있도록 아이들이 모여준다는 자체가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중2, 초6, 초4 삼 남매가 억지로던지 원하는게 있던지간에 저녁이면 어슬렁거리면서 모여줘서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가 지금 제게 '인생 최대의 감사이자 축복'입니다. 이 축복과 감사를 잘 이어가려고 재다짐하게 만드는 것이 그동안 출근길에 만난 '깨알들'입니다.
오늘 깨알들도 역시 소중합니다.
저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특히 저의 부족한 점들을 돌아보게 해주고 제대로 고쳐보겠노라고 다짐하게해줘서 참 좋습니다. 깨알들이 소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안에서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들을 보았습니다.
저녁이면 억지로이던지 원하는게 있던지간에 모여서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눠주는' 삼 남매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마치 태양 주변을 맴도는 행성들처럼 절대로 부딪치거나 만날 일은 없지만 그저 주변을 함께 맴돌듯이 삼 남매가 '아직까지는' 함께 살고 마주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것이 감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말합니다. "오늘도 함께 대화할 수 있어서 고맙다야!~"
산티아고 순례길이 부럽습니다.
길을 걷는 것인데 수많은 깨알들을 만나게 되고 재미와 깨달음을 얻는 것이 신기하고 즐겁습니다. 공짜라서 더 놀랍습니다. 이런 일을 매일 즐기고 지낸다는 것도 축복이자 즐거움입니다. 그러다 보니 엄청 유명하고 굉장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신 분들, 심지어 여러 번 다녀오신 분들이 매우 부럽습니다.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거기서 보는 자연의 깨알들, 구조물들, 건물들, 그 틈새에서 보이는 깨알들을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얼마나 신선할까?라고 생각하면서 늘 부러워만 하고 있습니다. 진짜 산티아고 가게 되는 날은 아내와 삼 남매가 동행하기에 독수리 5형제처럼 출동처럼 다섯명이 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깨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을 나눠보았습니다. 나눌수록 재미보다 어느샌가 깨달음과 감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은 지치고 궁핍하고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런 깨알들이 좋은 생각을 하게 해 주니 살아야 할 '맛'을 느끼고 다시 일어서곤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용기를 내서 또 다음 주 토요일에 쓸 생각을 하게 되는것같습니다. 1년이 52 또는 53주인데 이번이 32번째 발행이니 벌써 반년을 넘어 쓰고 있는 셈입니다. 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