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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Nov 09. 2022

나는 어떤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약 5개월 정도 공부한 결과, 미국 치과 국시에 패스했다는 결과를 받았다.

앞으로의 일정은 토플 점수를 따고, 에세이를 적어 미국 IDP(International dental program)에 들어가는 것이다. 약 7년 전, 캐나다에서 시험을 보러 갔다가 실수로 인해 쫓겨난 적이 있다. 덕분에 4년간 세계를 돌며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고 돌아 아메리카 대륙에서 치과를 하기로 결정하고, 공부를 하고, 패스를 했다.


7년 전 캐나다에서 시험을 패스하고 치과의사가 되었다면 남들과 똑같은, 일반적인 치과의사가 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 생각을 해보면, 치과의사가 되더라도 남들과 비슷한 치과의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세상을 보고 탐구했으며 다른 분야에 대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나보고 이단아 같다고 한다. 치과를 하긴 할테지만, 치과로 끝낼 것 같지 않다고. 나 또한 머릿속에 돌아가는 수많은 상황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겠다. 


요즘엔 설득과 협상의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으며, 젠더 사상과 글로벌로 벌어지는 성혁명에 관한 책들도 읽고 있다. 몇 주 전에는 이건희와 제프 베조스, 레이 크록, 엠제이 드마코 등 여러 기업가들의 책을 읽었다. 뇌과학과 심리학을 같이 읽기도 했고 공간 디자인과 건축에 관한 책을 읽기도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런 책들을 읽는지는 모른다. 그냥 관심이 생기고 흥미가 생기면 읽는 편이다.


여러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을 읽으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된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합적 사고가 가능해진다는 걸 느낀다. 새로운 걸 들어도 원리와 본질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자연스레 얻어진 결과물인 것 같다. 나는 이런 지식들을 세상에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치과라는 매개채를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의사들을 고용해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고리타분한 봉사의 이미지를 넘어 재밌고 유쾌하고, 치료하는 이들도, 치료를 받는 이들도 긍정적 에너지를 넘치게 받아갈 수 있는 봉사는 어떤 봉사여야 할까를 고민한다. 이 경험을 컨텐츠화 시켜 세계 각국에 있는 의사들을 어떻게 끌어 모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한 편, 치료를 받는 이들의 삶이 단순 치료만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마련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기도 한다. 벤 샤피로가 했던 연설 중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선단체나 비영리적 봉사단체가 사람들의 삶을 일정 부분 향상 시켜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적 향상을 일으켜 준 건 자유주의 시장 시스템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시장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시장은 이미 존재한다. 이미 존재하는 걸 두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


이에 대해 중요한 점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는 항상 무언가를 바꾸고 이뤄낸다. 위대하다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삶에 대해, 일에 대해 열정이 있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이는 마인드에서 나온다. 마인드가 부정적인 사람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알리바바의 회장 마오는,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은 "마인드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럴 정도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부정적이거나, 마인드가 가난하다면 변화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바뀔 의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을 하는 내 자신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단순히 치료만 해주고 끝내도 되지 않을까? 치료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서 이 전과 다를바 없는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이 내 책임도 아닐 뿐더러, 누군가는 변화 자체를 싫어할 수 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산다는 것이 틀린 삶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일 뿐일 수 있다. 내가 나서는 건 나의 자의식을 위한 오지랖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냥 '나는 나, 저들은 저' 라는 마음으로, 자의식 향상을 위한 봉사 의식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나 혼자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러면 된다. 


이런 여러가지 마음이 서로 상충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냥 신경치료나 교정치료 같은 것에 집중하며 돈이나 벌고 살면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유형이 될 수는 없나보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지만, 이제 그 첫 스텝을 뛰었다. 이 모든 생각은 그저 한낱 망상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일을 벌리겠지만, 나도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그 중심에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 자체의 유약함과 비겁함, 거짓되고 악한 본성을 충분히 알고 느끼고, 때로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그 행위 안에서 참된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시선과 관점이 세상의 물질적 풍요에만 쏠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자칫 잘못하면 허영과 자의식 과잉에 빠질 수 있다. 늘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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