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만드는 위스키, 탈리스커
내 고향은 포항이다. 고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다’다. 바다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여름이면 어깨의 허물이 몇 번이고 벗겨질 정도로 바다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어른들 몰래 일탈을 즐기는 장소로 바다를 찾곤 했다.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겠다며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겨울바다의 매서운 바람을 피해 버려진 어선에 옹기종기 모여 별빛 아래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바다와 함께였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바다가 그립다.
대구로 이사 오기 전까지 36년을 바닷가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바다는 나에게 ‘숨’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나 내 곁에는 바다가 있었고 바다가 있었기에 숨을 쉴 수 있었다.
솔직히 대구는 갑갑하다. 사방이 막혀있는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다를 늘 그리워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상이 있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봉양해야 할 부모가 있고 돌봐야 할 자녀가 있다. 일상의 무게가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돛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겁다고 던져버린다면 머나먼 바다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돛을 내리고, 점점 정착하며 머무를 곳을 만들어야 할 중년의 나이. 일상의 무게를 당연히 버텨내야 하는 그런 나이. 젊음의 치기보다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나이.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때로는 버겁다. 그럴 때 바다를 보며 힘을 얻고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벼웠던 그런 고민들로 걱정하던 그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가 삶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바다를 한번 보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럴 때 나를 위로해 주는 위스키가 있다. 바다를 닮은 위스키, 탈리스커 10년이다. 탈리스커는 ‘피트’ 위스키다. 과거 밀주를 만들던 시대에 석탄을 구하기 어려워 습지에서 채취한 이탄을 이용하여 몰트를 건조했는데 그 독특한 향과 맛으로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위스키를 만드는 재료 중의 하나이다. 사실 피트는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린다. 피트 위스키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양호실이나 정로환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피트 위스키를 접하면 사랑하거나, 증오하게 된다. (Love or Hate)
탈리스커는 피트를 사용한 위스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위스키가 아닐까 생각한다. 피트 위스키에 입문하기 가장 괜찮은 위스키가 바로 탈리스커 10년이다. 탈리스커는 ‘바다가 만든 위스키’(Made by Sea)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탈리스커 증류소는 슬로건답게 바다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해풍이 위스키를 숙성하는데 도움을 준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탈리스커 10년을 마실 때면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짭짤한 맛과 함께 향긋하고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요오드와 같은 해조류의 맛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훈제 굴과 같은 기름지고 부드러운 질감도 느낄 수 있다. 탈리스커 10년은 피트 위스키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위스키가 아닐까 생각한다.
탈리스커 10년을 한 잔 따라놓고 바다멍이 아닌 ‘위멍’을 하다 보면 내 생각의 무게가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다. 사실 착각이라는 것을 안다. 삶의 무게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중년의 남자에게 위로는 필요하다. 가족의 위로와 격려를 넘어서 나 혼자 그 무게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럴 때 위스키는 큰 도움이 된다.
바다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인생의 마지막은 제주도에서 보내고 싶은 나에게 어울리는 탈리스커 10년. 고숙성의 탈리스커를 마시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나마 탈리스커 10년은 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도 있고 가격도 적당하다. 탈리스커! 바다를 보러 갈 수 없어 마음을 쏟아낼 장소가 없을 때 나에게 휴식처가 되는 위스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