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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8. 2020

언제부터였을까

꿈 그리고 행복

 갓난아기 때부터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행복을 통해 자신 또한 행복을 느낀다. 


 갓난아이가 웃음을 보이자 그 아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이 웃으며 행복해 한다. 그 모습을 보는 아기도 행복감을 느낀다. 가족은 나의 행복의 지표다. 한 어린 아이가 우수한 성적표를 받자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 주신다. 다른 학우들이 부러워한다. 그러한 칭찬과 부러움의 시선으로 인해 그 아이는 행복감을 느낀다. 


 가족 이외의 타인이 나의 행복의 지표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한 성장과정 속에서 그들이 원하고 부러워하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찾아오게 되면 비로소 ‘나’에 대한 자아성찰이 이루어 지게 된다. ‘나’란 무엇이고 ‘나’의 삶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다. 그 전까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했던 나의 행동들이 후회스럽거나 ‘나’에 대한 성찰이 없다고 불행해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나의 일련의 행동들에 ‘나’는 없었다. 내가 먹고 싶은 초콜릿을 먹었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있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반박할 여지가 없지만, 이 문제는 본능적인 것을 벗어나 좀 더 고차원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나’를 찾는 과정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좌우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들을 위해서 써야 할 시간들을 학업이라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지나친 학구열로 인해 사춘기가 채 오기도 전에 학업에 대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방전된 상태로 이 시기를 보내는 사례들을 들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를 찾는 것과 행복, 그리고 꿈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질문이 들리는 듯 하다. 인생을 살면서 ‘나’ 자신이 행복해 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혹은 그 이상으로 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불행해 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 속에서 그 존재를 확인 받게 된다.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실현해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꿈이 되는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꿈이 무엇인지를 자문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부모님을 원망했다. 왜 나에게 꿈에 대해서 좀더 알려주지 않았을까? 왜 내 꿈을 좀더 물어보지 않았을까? 수학 문제를 하나 더 맞추는 것 보다, 그 시기에 내 꿈과 행복에 대해서 좀 더 생각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외적으로 보이는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바라보아야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남들이 ‘넌 행복한 거야’라고 수만 번 말해주더라도 정작 본인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꿈도 자신을 철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여야 알 수 있다. 


남들이 주입해 주는 그 어떠한 말도 듣지 말아라. 

 자신의 꿈은 자신이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말해 주는 것은 그저 자신들의 바람일 뿐이다. 내가 누군가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타인이 보기에 행복한 삶을 살지만, 스스로 불행해 한다거나 행복해 하지 않는다면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뿐이다. 이제는 나의 꿈,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두리뭉실하게 생각해 왔던 나의 꿈과 행복을 이제라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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